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월드컵 도박

bindol 2022. 11. 23. 05:51

[이규태 코너] 월드컵 도박

조선일보
입력 2002.06.16 19:30
 
 
 
 


투우·경마·투계 등 짐승을 겨루게 하여 싸움을 시켜놓고 승부에 돈을
거는 도박은 동서고금이 공통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개미를,
중국에서는 귀뚜라미를 호전적으로 길러 싸움을 붙여놓고 도박을 하는
투솔(鬪 )을 극히 근년까지 했다. 사람끼리 싸우거나 겨루게 하여 돈을
거는 도박의 역사도 유구하다. 고대 희랍에 아피스키로스라는 요즈음
축구와 유사한 경기가 있었는데 우승자에게는 황소 20마리 값인
500드라크마씩의 상금을 주어 승리를 유도했는데, 이 돈을 염출하기
위해서 승부를 건 도박 복권을 팔았다. 통신망이 전혀 없었던 중세에
권력자나 귀족들은 심부름하는 비각(飛脚)을 거느리고 살았다. 우수한
비각을 스카우트하는 행사로 경주(競走)도박이 성했었다. 도박을 위해
직업 비각이 생겨나기까지 했는데 18세기 포스터 보웰이라는 사나이는
런던에서 요크까지 647㎞를 5일 18시간 만에 주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말에 대신을 두루 역임했던 비각 출신의 이용익(李容翊) 대감이
한양∼전주 간 500리를 12시간에 주파한 것에 비기면 족탈불급이지만.

중세 영국에서는 마을대항 교구대항 축구가 잦았는데, 마을 뒤편에
골문을 세워놓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냇물을 건너 담을 넘고 창을 부수며
공을 따라 싸우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맹렬 축구였다. 시합이 있는 날은
집문과 창을 못으로 박고 세간을 옮겨놓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국왕이
되풀이 해 축구금지령을 내렸지만 멎지 않았던 것은 도박사들의 파워
때문이었다. 시합 중 파괴된 가재의 보상을 핑계로 도박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축구의 승부를 둔 도박을 공식화한 것이 2차대전 후의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열광하는 축구경기에 토토카르초라는 도박을 도입,
전국 13개 도시에서 베풀어지는 축구경기 중 12경기의 승패가 적중되면
도박금 총액의 45%를 당첨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유구한 전통의
자락에서 월드컵 도박이 올해에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전에 없던
인터넷이 가세해 베팅 사이트가 다양하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공적·사적 체육복표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이루고 있다 하며, 출전국
아닌 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축구보다 도박열기가 웃돌고 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