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마이너스 정신

bindol 2022. 11. 23. 06:16

[이규태 코너] 마이너스 정신

조선일보
입력 2002.05.27 19:07
 
 
 
 


힘을 겨룰 때나 힘든 일을 할 때 두손바닥에 침을 튀튀 뱉는다. 힘을
내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이 행위를 왜 하는걸까. 원시인 시절
야수에게 쫓기면 나무에 올라 피신하는 길밖에 없다. 그 위급상황 곧
마이너스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나무를 타는 데 미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손바닥에 땀을 나게 하는 조건반사의 흔적이라 한다. 곧 마이너스 상황을
탈출하고자 이전에 없던 힘을 얻게 마련이며 그 흔적이 침뱉는 습관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파란불이
켜지고 8강까지의 기대가 일고 있다. 잉그랜드 팀과 비기고 FIFA랭킹
1위의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한 것이 기대를 과열시키고 있다.
그러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것과 그러할 수 있다는 것과는 그
후유증에서 천양지차가 난다. 이길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졌을 경우는
기대가 역작용해서 배신감으로 분노의 표적이 되고 엉뚱한 쪽으로 분출할
수도 있다. 성과가 기대될수록 국민·선수·감독 모두가 겸손해야 한다.

옛 선비들은 바깥나들이 할 때 비단 바지 저고리를 입었더라도 겉은
베두루마기를 걸치고 나갔다. 노자(老子)의 「빛나되
번쩍거리지말라(光而不耀)」와 같은 진리다. 임진왜란 때 연안성을
지켰던 부사 이정암(李廷唵)은 단 500명으로 구로다(黑田長政)가 이끈
3000 대군과 3주야를 싸워 연막작전으로 대첩을 거두었다. 한데 이
대첩을 둔 조정에의 보고는 어느날 적이 연안성을 포위했다가 아무날
이를 풀고 돌아갔다고 했을 뿐이다. 조정에서는 「적을 패퇴시키기도
어렵지만 공을 자랑하지 아니하기는 그 더욱 어려운 것이다」 하고
군신(君臣)이 붙들고 울었다 한다. 결혼 전 남녀가 사귈 때 상대방의
장점만 보게 되고 또 장점만 보이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플러스 인식만 갖고 결혼하면 그 이튿날부터 결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플러스 인식 때문에 그 결점들이 부풀려 더 나빠보이고 속았다는 분노가
겹쳐 파경으로 몰아간다. 반면에 결점만 보고 또 결점만을 보이게 하여
마이너스 인식으로 시집 장가가면 장점이 부각되고 실제보다 부풀려
잘보이게 마련이다. 뮌헨 올림픽 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쇼터 선수가
국민의 기대를 인식한 만큼 피로의 무게가 더했다고 한 말은 음미해볼
만하다. 그래서 16강이 기대될수록 마이너스 정신에 투철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