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벌거숭이 닭
고대 희랍의 반체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정통 철학자 플라톤과는
앙숙이었다. 빈 통속에 살면서 굴러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디오게네스더러 플라톤이 개라고 말하자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발길질하고 욕질하는 사람에게 되돌아가곤 하니까ㅡ」 했다. 플라톤의
「인간은 털 없는 두발 짐승이다」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을 무렵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이 가르치고 있는 교실에 불쑥 나타나 「이것이
플라톤의 인간이다」며 털 뽑은 벌거숭이 닭을 들어보였다. 플라톤의
논리를 비하하는 벌거숭이 닭이지만 중국에서 「벌거숭이 닭이 진짜
닭이다」는 논리를 편 것은 양주(楊朱)다. 닭에는 오덕(五德)이 겸비해
있는데 머리에 벼슬을 이고 있으니 문(文)이 있고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으니 무(武)가 있으며 싸움을 잘하니 용(勇)이 있고 모이를 암탉에게
남겨주니 인(仁)이, 정확한 일출을 알려주니 신(信)이 있다 했다. 한데
닭으로부터 날개와 털을 없애버려도 벼슬이나 발톱은 남고
용(勇)·인(仁)·신(信)의 심덕도 훼손받지 않으니 털과 날개는
허식이요, 없어도 되는 꾸밈에 불과하기에 진국 인간을 벌거숭이 닭에
비유한 것이다.
벌거숭이 닭에 대한 민화도 있다.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이 살쾡이에게
날개를 물려 찢겨나갔다. 그 날개 없는 닭이 깐 병아리 가운데 날개 없는
닭이 태어났으며, 어미 생각에서 날개가 생겨나지 않았다 하여
효계(孝鷄)로 불렸다 한다. 어느 한 불심이 돈독한 이의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지금 삶아져 죽기 직전이니 목숨을 구해달라기에 꿈을 깨어
살펴보니 닭 백숙을 하고자 불을 피고 있음을 보고 솥을 열어 털 벗긴
닭을 꺼내주었더니 살아 달아났는데, 그후 털이 돋아나지 않아 추운
겨울에는 이 벌거숭이 닭을 방안에서 길렀고 불계(佛鷄)라 불렀다 한다.
닭은 지중해 연안에서 신의 사자로 여기고 사후에 저승까지 인도하는
길잡이로 알았다. 이 저승 사자에게 희생하는 닭은 벌거숭이어야 하고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에 아스크레피우스(醫神)에게 빚졌다고 한
닭은 희생용 벌거숭이 닭이었음을 알수 있다. 이 같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털없는 벌거숭이 닭을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제 디오게네스는 닭 털을 벗기지 않아도 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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