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回婚

bindol 2022. 11. 25. 16:38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回婚
입력 2002.05.15 17:26:14

LG그룹 구본무 총수의 어버이 구자경씨 내외의 회혼례(回婚禮)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요즈음은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선물을 하거나 외식으로 기념하지만 옛날에는 결혼 60년이 되고 양주가 모두 살아 있어야 경사라 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었으니 이를 회혼(回婚)이라 했다. 유럽에서도 결혼 기념일은 생일 못지않은 잔칫날이 돼 왔는데 영국의 경우 5주년에 목혼식(木婚式), 15주에 동혼식(銅婚式), 25주에 은혼식(銀婚式), 50주에 금혼식(金婚式), 그리고 60년이 돼야 금강혼식(金剛婚式)으로 축하했다. 미국에서는 금강혼식을 결혼 75주로 연장하고 있다. 산업화하면서 실속을 챙기려는 상혼(商魂)이 끼어들어 12년 만에 피혼식(皮婚式), 20년 만에 도자혼식(陶磁婚式), 30주에 상아혼식(象牙婚式), 40주에 모직혼식(毛織婚式), 45주에 견직혼식(絹織婚式)으로 잔치를 늘려가고 있다. 옛날에는 15세 전후의 조혼(早婚)이기에 70대 중반이면 회혼을 맞을 수 있었으나 수명이 짧아, 요즈음은 수명은 늘었지만 혼령(婚齡)이 늦어 회혼맞기가 여전히 희귀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정사에 회혼 사례가 극히 드물다. 「증보문헌비고」에 정조때 한 백세노인은 근력이 왕성하기를 육칠십 같고 회혼을 지난 지 10년이 되었다 하고 흑발에 이가 새로 나고 얼굴에 광채가 나며 슬하에 74명의 자손을 두었으니 이는 국가의 상서로운 징조라 하여 임금이 쌀과 고기를 내렸다 했다. 희귀하게 발굴된 「회혼가(回婚歌)」는 그 회혼잔치의 절차를 알 수 있게 한다. 「옛날의 서왕모(西王母)는 8000년 살았어도/요지연(瑤池宴) 배설할 때 해로동석(偕老同席)못하였고ㅡ」로 시작하여 낙락장송 베어다가 쉰폭 차일 괴어 놓고 시집장가갈 때 입었던 사모관대 족두리 장삼 갈아입는다. 이 회혼을 위해 고이 간직했던 합근 술잔에 술을 담아 두 양주가 더불어 입을 댐으로써 잔치는 절정에 이른다. 60년전 동신일체를 서약하는 혼례의 합근례(合 禮)때 썼던 청실 홍실 늘어뜨린 표주박 잔으로 평생 두 사람의 금실을 지켜왔던 사랑의 감시자다. 60이 넘었을 아들들은 때때옷 지어입혀 헌수상( 壽床) 앞을 기어다니고 양주에게 응석과 어리광을 부려 노부모를 예로 돌아가게 했던 경로문화의 싱그러운 부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