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사이버 文身

bindol 2022. 11. 25. 16:36

[이규태 코너] 사이버 文身

조선일보
입력 2002.05.17 20:04
 
 
 
 


개개인의 모든 신상이나 정보, 병력(病歷) 등을 담은 쌀알만한 컴퓨터
칩을 팔의 피부에 이식시켜 지구상 어디서든지 판독기로 읽을 수 있는
벨리칩이 개발돼 미국에서 시술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객지에서 병이
나더라도 당장에 병력을 알 수있어 치료에 효과를 얻는 등 좁아지고
바빠지는 지구촌에서 필요한 개인정보 탐지 기술로 장점도 없지 않으나
단점이 오히려 보다 많을 것 같은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다.

유태인을 식별코자 노란 표지를 가슴에 달게 하고, 함부르크에서
창녀에게 노란 스카프를 씌운 것이며, 한국에서 백정 저고리 끝에 검은
천을 달게 하는 등 차별화의 역사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기득권을
지키고 순수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좋을지 모르나 인도나 인권
측면에서는 그 차별문화를 축출하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방목하는 소나
말의 등에 낙인을 하여 식별했듯이 범죄를 저지른 전과 표시로 신체
특정부위를 바늘로 쪼아 먹을 먹이는 문신(文身)이야말로 차별문화의
극치였다.

고려 형법에 유배지에서 죄인이 도망치면 이를 잡아 경면(鯨面)한다
했는데, 얼굴에다 문신시켜 죽을 때까지 전과를 얼굴에 표시하고 살아야
했다. 조선조에 들어 강도에게는 「강도·强盜」, 절도에게는 「절도·
盜」, 부정부패 공무원에게는 「도관물·盜官物」, 백주 강도에게는
「창탈· 奪」, 장물아비는 「와주·窩主」라고 팔뚝에 문신하고 전과를
평생 지니고 살게 했다. 이 문신형은 인도적 임금이던 영조 때 폐했지만,
여염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약속하는 수단으로 팔뚝에 문신하는
연비(聯臂)가 은밀히 번져있었다. 성종 때 조정을 흔들었던
음풍(淫風)사건의 주인공 어을우동(於乙于同)의 팔뚝을 걷어보니 그녀와
연비 서약을 한 조정 명사의 이름들이 문신돼 있었다 한다.

신상 정보를 살 속에 죽도록 간직하는 베리칩을 개발한 회사는
죄수들에게 칩을 이식시켜 도망하지 못하게 하고 도망쳐도 인공위성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하고자 교정당국과 교섭하고 있다 하니 사이버화한
현대판 문신이라 해도 대과가 없다. 사람은 남들에게 알리고 사는
서푼(三分)과 숨기고 사는 칠푼(七分)이 조화돼 있어야 안정된다는
중국문헌 「요재지이(聊齋志異)」의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하는 사이버
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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