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실크로드 연수
광해군 때 갑부로 고비(高斐)라는 이가 있었다. '자린 고비'라는 말이
이 고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을 만큼 인색하기로도 소문난 부자다.
돈을 많이 벌었기로 팔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돈버는 비법을
은밀히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 고비는 어떤 어려움도 무릅쓰겠다는
다짐을 받고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로 데려간다. 나무에 오르게 하여
곁가지를 타라고 시킨다. 가지 끝에 이르면 두 손으로 가지를 붙들고
늘어지라 시키고는 한 손을 놓으라 한다. 이 갑부 지망생은 돈벌지
않겠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고비는 말했다. "알겠는가. 돈벌이에
나섰으면 그 벌이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고통을 참고 집념에 흔들림
없기를 나뭇가지 붙들듯 해야 함이요, 일단 들어온 돈은 나뭇가지 놓으면
목숨 잃듯 악착같이 붙드는 것이 축재 비결의 전부일세"라고 했다.
고대 실크로드에서 상권을 좌우했던 소그드 상인은 아들을 낳으면 혀를
가시로 찌르고 손에 아교를 쥐어주는 의례가 있었다. 그로써 장사하는 데
수반되는 아픔을 참고, 일단 들어온 돈은 아교에 붙듯 놓치지 말라는
집념의 상인 교육인 것이다. 고비의 나무 타기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일용품을 팔도에 공급하는 상업조직인 개성 무시로 도가(都家)에서 상인
자제들 교육시킬 때 돈 한푼 주지 않고 이레 동안 자기가 주변해서
먹고사는 내고(耐苦) 방출을 했던 것도 같은 이치다.
보도된 바로 한빛은행에서는 2000㎞의 모래바람 부는 실크로드 사막길
대장정(大長征)으로 고대 상인의 집념과 투지 및 고통감내 체험으로 사원
연수를 한단다. 신라 때 혜초(慧超)가 나는 새 한 마리 없고 초목 한
그루 없으며 마치 불에 탄 산 같은 실크로드를 걸을 때 읊은 시가 있다.
'찬 눈은 열빙(裂氷)을 끌어모으고/찬바람은 매섭게 땅을
갈라놓는다/들판은 언 바다와 분별을 못하고/강물은 험한 벼랑을
갉아먹는다.'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숨을 고르느라 잠시 동안 발을
떼지 않아 하반신이 묻히고, 어디로 가는지 표식도 없이 그저 모래에
묻혀 죽은 사람이나 말의 해골만이 군데군데 드러난 바로 그 실크로드다.
곧 나무 타기로 터득한 고비의 수직 체험을 실크로드라는 수평체험으로
달리했다는 차이밖에 없는 사원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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