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코 인사
뉴질랜드에 들른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원주민인 마우리족과 코를 맞댄
전통 코인사 사진이 보도되었다. 우리나라 절처럼 체위를 낮추는 종적
인사보다 코를 맞추는 횡적 인사는 보다 평등하고 현대적인 것 같지만
생소하여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에도 코인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도잡가(南道雜歌)에 '임과 함께 보릿대 뽑아물고/빙빙돌며 콧등을
비빈다'는 대목이 있는데 남녀 유별의 가혹한 중압을 피해 보리밭에 가
보릿대 서로 물고 코를 비비는 간접 키스는 그 얼마나 목가적인가.
입술을 맞대는 키스의 전 단계로 보다 청순한 한국판 코 키스였다 할 수
있다. 안긴 아기에 대한 사랑 표시로 어머니가 곧잘 콧등을 대 비비곤 한
것으로 미루어 한국에서 코를 맞추는 문화는 고도로 순화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나온 대만 견문기 '대해사차록(臺海使
錄)'에 대만 풍속으로 친지가 만나면 서로 코를 맞대고 인사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코를 맞대는 인사는
인도·인도차이나·미크로네시아·뉴질랜드 그리고 에스키모 지역에도
있었다. 친지를 만나면 서로 콧등을 긁는 아이누족의 인사도 코인사의
변형일 것이다. 이 코를 맞대는 인사 문화권에서 냄새 맡는다는 말과
인사한다는 말이 같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산스크리트어인 '글라'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키스를 속된 말로 '개코를 댄다'고 하는데
바로 암수의 개가 사랑의 전희(前 )로서 코를 접근시키는 행위에서
'글라'가 탄생된 셈이다. 이 말이 라틴어에 흘러들어 인사를 뜻하는
그리트(英)·그라티아(伊)·그루센(獨)·그루텐(和)으로 정착한 것이다.
사랑의 동작으로서 이 코 키스가 입 키스보다 선행됐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 고전인 '하간전(河間傳)'에 하간의 음부(淫婦)들이 코의
크고 작음으로 정부(情夫)를 골랐고 음탕하기로 악명높은 14세기
나폴리의 여왕 요한나도 코 큰 남자를 골라 들였으며 '심청전'의
뺑덕어멈도 코 큰 총각만 골라 떡을 사주었듯이 코는 성기의 상징이다.
야외의 석불치고 코가 남아난 것을 볼 수 없는 것도 그 코를 떼어
가루내어 먹으면 양기가 좋아진다는 속신 때문이었다. 곧 코 키스는
성애동작을 입술로 물리고 서로를 반기고 존경하는 인사로 순화되어
오늘에 이른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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