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추기경의 장애체험
한·일 시각장애인 축구대회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눈을 가리고
시축함으로써 아픔을 나누는 광경이 보도되었다. 예수가 심판받았던
예루살렘 빌라도 총독관저에서 골고다의 형장(刑場)까지 예수가 십자가
메고 걸었던 고난의 비탈길에는 예수가 메었던 것과 같은 무게(70㎏)의
십자가를 메고 그 고통을 체험하는 순례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납치돼갔다가 일본 도쿠가와(德川家康)의 천주교 금교령에 저촉되어
외딴섬 고우쓰시마(神津島)에 유배해 살았던 한국 여인 줄리아는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공감하고자 해변의 자갈밭을 매일처럼 맨발로 걸어 피를
흘렸다. 그 섬에 붉은 자갈이 많은데 줄리아의 피 자갈로 구전되고
있었다. 테헤란 거리에서 이슬람 신도들이 쇠사슬로 자신의 등을 쳐 피가
낭자한 채 통곡하는 피비린 고행 행렬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이슬람
종주권을 두고 고제(高弟)파와 상속파의 암투에서 혈연파 우두머리가
고통받고 피살당한 데 대한 고통 공감 행렬이었다.
종교 말고 윤리적 유대를 강화하고 덕을 쌓는 고통 공감 민속도 꽤
발달했었다. 부모가 앓아 누으면 손가락을 기름에 담가 불을 켜는
소지기도( 指祈禱)로 아픔을 공감, 부모의 은공을 기렸다. 아내가
진통하기 시작하면 남편이 산실의 지붕에 올라가 나둥굴음으로써 고통을
더불어 함으로써 부부사이를 끈끈하게 유대시키는 산공(産公)습속도
있었다.
희랍의 시인 호머는 앞을 보지 못했다. 그의 문하생들은 스승과 더불어
있는 시간에는 눈을 감고 행동하여 스승의 고통을 공감했고 그로써
호머의 오묘한 시의 경지를 터득하는 관행이 있었다 한다. 톨스토이의
자전적 소설에 보면 어릴 적 앞 못보는 친구이야기가 나오는데 눈이
안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알고싶어 며칠 동안 눈감고 지낸 적이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심청이와 친구들이 장님 놀이를 함으로써
아버지의 고통을 공감, 아픔을 나누는 대목이 나오는 심청가도 있다. 앞
못보고 살았던 헬렌 켈러의 「사흘 동안의 시력」이라는 에세이에 만약
사흘 동안만 자기에게 시력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어떻게 쓰겠다고 하고
「내일이면 시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시력을 유효하게
쓰십시오」 했다. 앞을 보지 못했던 헬렌 켈러의 앞을 보는 사람의
공감행위로 눈물겹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금강산 댐 (0) | 2022.11.25 |
---|---|
[이규태 코너] 코 인사 (0) | 2022.11.25 |
[이규태 코너] 回心曲 (0) | 2022.11.25 |
[이규태 코너] 가시나무 새 (0) | 2022.11.25 |
[이규태 코너] 실크로드 연수 (0) | 2022.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