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금강산 댐
북한 땅 북한강 상류를 막아 만든 금강산댐이 들어선 지역을 조선초
학자 강희백(姜希伯)은 「땅이 독속같이 편벽하여 숨어살기
알맞구나」라고 읊었고, 고려말의 이곡(李穀)은 「숲 사이의 낡은 집은
유망(流亡)한 백성들의 빈 집이요 산비탈 밭들은 수탈에 시달려
황폐해져있구녀」라고 읊었을 만큼 예부터 버려진 독 같은 오지였다.
목적은 금강산의 산허리를 뚫어 그 터널로 댐물을 동쪽으로 끌어다
수력발전을 하기 위한 것으로 돼 있다. 그 수몰지역에 통구(通溝)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구(溝)는 인공적인 수로를 뜻하기에 금강산댐의 발전
수로를 내다보는 예언적인 지명이라고 한때 입에 올랐었다.
그 금강산 흙둑의 함몰한 부위들과 둑 허리에서 물이 새는 모습을
인공위성이 알림으로써 15~16년 전에 휘몰았던 공황이 다시 뉘엿거리고
있다. 당시 만수가 된 금강산댐의 둑을 전략상 일시에 트면 한강 하류가
수몰되어 일대 혼란을 야기시킨다해서 대응 평화의댐을 구축하곤 했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수공병법(水攻兵法)을 쓸 수 있는 댐인
것만은 분명하다. 수공병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적이
주둔하는 상류에서 식수원이 되는 물줄기를 오염시키거나 독을 풀어
공략하는 탁오공법(濁汚攻法)이요, 다른 하나는 적이 취락하는 지대로
흐르는 물줄기를 낱낱이 차단하여 물가뭄으로 공략하는
건갈공법(乾渴攻法), 그리고 적의 성이 있는 상류에 둑을 높이 쌓아 물을
담아두었다가 일시에 이를 터 수몰시키는 관수공법(灌水攻法)이다.
「십통분류(十通分類)」 수공편에 보면 동탁(董卓)이 오랑캐를 칠 때
탁오공법을 썼고 당태종이 반란을 일으킨 흑달(黑 )을 칠 때 건갈공법을
썼으며 송태조가 북정(北征)할 때 분수(汾水)를 막아 관수공법을 썼다.
일본의 무장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장기가 수공법이었다. 일본
무주(武州)의 인성(忍城)을 공략할 때 그의 심복인 이시다(石田三成)로
하여금 관수공법을 쓰게 하여 둑을 높이 쌓아올렸는데 이를 알아차린
적병이 작전 개시 직전에 잠입, 그 둑에 구멍을 내는 바람에 그 큰 물이
역류하여 이시다 자신도 익사 직전에 업혀 나왔던 것이다. 반드시 수공이
아닐지라도 깨진 독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불안이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밥퍼’ 운동 (0) | 2022.11.25 |
---|---|
[이규태 코너] 유명인의 아들들 (0) | 2022.11.25 |
[이규태 코너] 코 인사 (0) | 2022.11.25 |
[이규태 코너] 추기경의 장애체험 (0) | 2022.11.25 |
[이규태 코너] 回心曲 (0) | 2022.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