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보쌈질
전근대적 결혼풍습인 약탈혼(掠奪婚)이 중국과 러시아 접경에 있는
키르기스스탄에 관행으로 남아있으며 몸값을 두고 갈등이 생기지 않는 한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는 특파원의 보도가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의
엉덩이에는 한국사람처럼 몽골반점이 있고 돌잔치며 삼일장 등 유사한
통과의례와 풍습을 지녀 문화적으로 같은 뿌리를 추정케 하는 민족이다.
과부나 처녀·총각을 약탈할 때 커다란 보로 싸매고 온다 하여 약탈혼을
보쌈질이라 하는데 20세기 초만 해도 과부 보쌈은 흔히 있었던
우리나라이기에 관심이 쏠린다.
정조때 문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보면 노수신(盧守愼)이 남쪽
섬에 유배돼 있을 때 사나이들이 작당, 폭력으로 처녀를 약탈하는 풍속이
있음을 보고 혼인의 예법으로 교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북녘
변경지방에도 「몽둥이 혼인」이라 하여 처녀를 약탈 결혼을 강요하는데
거부하면 방안에 가두어 구들장 하나를 빼고 아궁이에 청솔가지를 때
연기를 피우는데 질식 직전에 부모들이 달려와 승낙하는 절차를 밟았다.
처녀만이 아니라 총각 약탈도 없지 않았다. 광해군때 문헌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보면 과거치르러 상경한 서생이 야밤에
종가에서 장정들에게 보쌈질 당한 사례가 적혀 있으며 사복차림으로
미행(微行)하던 영조대왕도 보쌈질 당할 위기를 겪고 있다. 과부
보쌈질에 대한 마지막 공식문서로는 고종 32년(1895)
「제규유편(諸規類編)」을 들 수 있는데 보부상(褓負商)들이 지방에
돌아다니며 과부약탈을 일삼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영국에서 바리케이딩이라 하여 결혼행렬을 몽둥이나 때로는 창이나 칼을
들고 방해하고 새끼줄을 쳐 가지 못하게 했다. 이스라엘에서
신랑신부에게 신었던 신발을 던지는 것이며 오물을 던지는 풍습은 슬라브
라틴민족에게 공통되고 있다. 신부를 빼앗긴 형제나 마을 청년들이
신랑집에 가 신랑에게 폭력을 휘둘러 몸값을 보다 많이 뜯어내는 관습도
동서양에서 많이 채집되고 있는데 이 모두 약탈결혼의
후유뮨화(後遺文化)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혼전에 함 팔기의 승강이나
시집가는 가마에 두엄을 던지는 것이며 혼후에 장가간 신랑을 매달아
폭행하는 자리보기 등도 바로 우리나라 보쌈 문화의 잔존 풍습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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