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들기름
혓바닥에는 각기 다른 맛을 감지하는 미역(味域)이 따로따로 발달한다.
한데 외국사람들에게는 퇴화하거나 미개한데 한국사람에게 별나게 발달한
미역이 두 군데 있다. 그 하나는 발효음식에서 나는 삭은 맛을 감지하는
미역이요, 다른 하나는 기름에서 나는 고소한 맛을 감지하는 미역이다.
고소하다는 말 자체를 가진 나라도 드물다. 영어에서 고소하다는 말은
깨맛같다 하고, 일본에서도 고마아지 곧 깨맛같다 하거나
간바시ㅡ향기롭다고 할 뿐 독립된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것은 그 맛을
둔 문화가 미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기적으로 닥치는 기근과 해마다 넘어야 하는 보릿고개 때문인지 우리
조상만큼 야생의 풀을 먹어온 민족도 드물다. 이렇다 할 맛이 없는 풀을
목구멍에 넘기고자 고소한 맛이 발달했으며 그 고소한 맛을 내는 작물로
참기름을 내는 참깨(胡麻)와 들기름을 내는 들깨(荏子)가 있다. 이
들기름에 뇌에서 신경전달을 촉진하는 물질이 들어있고 이 물질이 늘수록
기억력이 증가하고 사물 인식이 빨라진다는 한국 학자의 실험결과가
미국과학원 학회지에 실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패랭이 꽃대가 바람에
부러지면 할머니는 삼대를 대고 삼으로 깁스를 한 다음 들기름을 칠해
살려내던 것을 어릴 적 본 기억이 난다. 들깨를 소자(蘇子)라고도 하는데
아마 소생시킨다 해서 얻은 이름이 아닌가 싶다. 한적(漢籍)에
거승(巨勝)으로도 나오는데 '좋은 생각을 갖게 하는 외국
꽃(善思夷華)'이란 뜻의 산스크리트 말에서 비롯된 말이라 한다.
「본초강목」은 오부경(五符經)을 인용, 들깨로 환약을 만들어 상복하면
만물에 통하고 신명에 접하며 재주에 뛰어 난다 했으니 이미 체험방으로
들기름이 두뇌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접하는 것이 들기름이다. 아기가 갓 태어나면 맨 먼저 들기름을 솜에
묻혀 입안을 씻어주는 관행이 있는데 그로써 잔병을 없게 하며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것으로 알았다. 서당 다닐 무렵의 아이에게 청양(靑 )이라
하여 들깻잎 쌈을 싸먹이는 풍습이 있는데 그 들깻잎이 천자문 외우는 데
도움을 준다는 속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 관행이 범연한 것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하는 들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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