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한자교육

bindol 2022. 11. 26. 08:47

[이규태 코너] 한자교육

조선일보
입력 2002.04.12 19:25
 
 
 
 


학생 때 시험문제로 '견유학파(犬儒學派)'의 풀이를 구하는 문제가
나왔던 적이 있다. 학풍이 무성했던 고대 희랍의 어느 학파일 것이라는
것 이외에 전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한자풀이로 따져
가늠해 볼 수밖에 없었다. 유(儒)는 '人+雨+而'의 모둠글자다.
시골에서 허수아비 수염을 그릴 때 '而'자 묘양으로 그린 것으로
미루어 而는 수염일 것이요, 비(雨)에 젖은 수염은 부드럽고 유연해질
것이다. 그런 수염을 한 사람(人)은 강직한 사람 무인(武人)의 반대인
문인이나 선비 학자일 것이다. 개(犬)는 이집 저집에서 얻어먹고 다니는
걸식동물이요 따라서 견유(犬儒)는 개처럼 걸식하고 다니는 학자이고 그
학풍을 따른 학파가 견유학파라고 답안을 썼다. 알지 못하면서 꾀를 내어
정답을 만든 요행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표의문자인 기초 한자만
알면 웬만한 한문의 뜻풀이는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된다는 한자의
효용성을 둔 체험담인 것이다.

계집 여(女)자만 알면 적어도 300여자의 계집 여변 한자의 뜻을 절반은
알고 든다. 할미 고(姑)는 낡은(古) 여자요, 어미 모(母)는 유방이 두 개
달린 여인이고, 부(婦)는 빗자루 들고 살림하는 여인이며, 기(妓)는
기능(支)을 가진 여인이다. 뿐만 아니라 '계집 여'자가 위아래에
들어간 말 400여개의 뜻 또한 절반 이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자교육은 한문을 부활시키려는 방편이 아니라 우리말을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익히는 최선의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천자문(千字文)은 한자뿐이 아닌 종합 인생교과서다. 이를테면
천자문 43행인 '지과필개(知過必改)'를 배울 때 다음과 같은 리더십에
감명받았던 기억이 난다. 진나라 목공(穆公)이 자신의 말 다섯 마리를
잡아먹은 도적떼를 잡아 꿇어앉혔다. 죽을 줄 알고 떨고 있는데 목공은
말고기를 먹고 좋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주독으로 죽을 수도 있다면서
술을 내려 과실을 뉘우치게 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신으로 만드는
리더십을 가르치기도 했다.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교육부장관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에게 청원한 것을 계기로 시비가 가열되고 있다. '왜
교육정책을 맡았을 적에 실천하지 못하고 이제와서들…' 하는 원망도
없지 않다. 다만 청와대의 문화저울이 녹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