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南韓 소나무

bindol 2022. 11. 27. 09:03

[이규태 코너] 南韓 소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2.03.19 19:57
 
 
 
 

근년에 한국 산들을 자주 오르다보면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시들어가고
있음을 완연히 느낄 수 있다. 추위 속에 잘 자라는 이 침엽수 대신 더위
속에 잘 자라는 활엽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다.
때마침 한국환경정책연구원에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의 식생변화
예상도를 작성·발표했는데, 앞으로 100년 뒤인 2100년에는 한반도의
기온이 1990년보다 2.08도 올라 소나무는 10분의 1로 줄어
태백산·지리산 그리고 설악산 극히 일부 지역에 조금 남아서 자랄 뿐,
남한 전역에서 소멸될 것으로 예상했다. 소나무의 소멸은 한국이나
한국인의 정체성 소멸로 직결되어 불행한 미래를 연상케 하고 있다.

한국인은 태어날 때 「내 나무」라 하여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
소나무에 오복을 빌었고 병들면 낫기를 빌었다. 과거에 등과하면 그
소나무 밑동에 관대를 걸어주고 축복했다. 그리고 소나무를 잘라
기둥·서까래 삼아 집을 지어 눈비를 가리고, 소나무를 잘라 때어 방을
덥혀 밥을 짓고 추위를 막으며 어둔 밤을 관솔로 밝혀 내내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그 「내 나무」를 베어 관을 짜 묻혀 영생했던
한국인이다.

좌절했을 때 바위벼랑을 뚫고 내린 소나무 뿌리에 용기를 얻어 대성한
분이 초의선사(草衣禪師)뿐이 아니며, 바람·이슬 불변하고 사시사철 늘
푸름으로 지조를 다진 것이 성삼문(成三問)뿐 이겠는가. 고려 때 문장
이인로(李仁老)가 옥당(翰林院)에 서 있는 소나무를 행해 일갈하길
「너같이 허리가 구부정하고 푸른 수염난 자가 어찌 이 신선부에 들어와
있느냐」했다. 이에 소나무 대꾸하길 「내가 비록 비틀어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나 빙설 같은 맑은 기개가 선생의 지조를 깔보며, 풍우를
마다않고 이겨낸 억지는 선생의 외고집을 손가락질하며, 천년을 지나도
무성함은 선생의 지친 여생을 비웃는도다」했다. 또한 조상들 마음에
욕심이나 원한이나 시기나 오기 같은 사특한 마음이나 갈등이 생기면
언덕바지에 고고하게 서서 바람을 드리는 소나무를 찾아간다. 그 아래
단정하게 앉아 솔잎이 바람을 가르는 풍입송(風入松) 소리로 마음을
재운다. 그 소나무가 100년 후에 모조리 북상해버리고 남한의 산들은
열대림으로 변한다 하니 이제 남산의 소나무 아닌 어떤 나무로 애국을
해야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