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황사 天心觀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모랫바람을 황사 또는
황진(黃塵)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황토(黃土)라고 한다. 바람속의
미진이 먼지나 모래로 비유하기에는 너무 크고 모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황사를 나르는 바람도 칼날로 에이듯하다 하여 괄풍(刮風)이라
부른다. 아마도 사막의 흙을 칼로 에이듯 파서 날린다 해서 얻은 이름일
것이다. 탐험가 헤딘의 「고비사막 탐험기」에 이 황사를 당한 대목이
나온다. 서풍을 타고 밀려드는 이 모랫바람은 마치 검은 벽이 밀려드는
것 같았으며 그 속을 걷는다는 것은 탁류속을 거슬러 가는 듯한 압력을
받았으며 몸을 30도쯤 뒤로 젖혀 저항을 주려 해야 겨우 한 발자국씩 뗄
수 있었다 했다. 텐트는 누더기가 되어 날아가지 않으면 모래에
묻혀버리기에 텐트 속에서 바람을 피한다는 것은 생매장을 의미한다.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잔 돌멩이가 와서 치는 듯한 통증으로 자상을
입고, 지쳐서 잠시 동작을 멎으면 그 사이에 모래에 허리까지 묻혀버린다
했다.
중국에서 황사가 심하면 최초의 황제인 황제(黃帝)의 노여움으로 알고
임금은 수라상의 찬을 줄이는 등 겸허하고, 정사의 잘잘못을 챙기는
법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한가지였다. 고려 현종 때 황사로
사방이 어둡고 역질이 번져 사람이 죽어 나갔다. 이 때 정승
유진(劉瑨)은 형정(刑政)이 균형을 잃어 천심이 노여워한 것이라 하여
형정 개혁을 했다. 공민왕 16년에도 황사로 눈 뜨고 돌아다닐 수 없자
임금은 신돈(辛旽)으로 하여금 문수회를 베풀어 부쳐님의 가호를 빌게
했다.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에 보면 임진왜란 중에 누런 안개로
사방이 막혀 하늘의 해를 못보기를 대엿새가 계속됐으며 특히 영호남이
심했다. 이로써 전황이 불리해질 것을 가늠하고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황사가 비에 젖어 내리면 황우(黃雨), 눈에 섞여 내리면 적설(赤雪),
안개에 섞이면 황무(黃霧)라 하여 삼국시대 이래 꼬박꼬박 기록해 내린
것은 이 이변이 임금이나 360고을 방백수령(方佰守令)의 정사에 대한
천심의 응징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중국 베이징은 시계 제로의
황사가 덮쳤다더니 근년에 없었던 황사를 한반도에 몰아붙이고 있다.
여야 없이 정치하는 사람들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모랫바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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