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유미리의 외조부
일본의 교포 여류작가 유미리씨가 주말 서울에서 있었던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했다. 나약한 체질로 중도에서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이나 무릎
관절의 통증 그리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완주를 해냈다. 뮌헨 올림픽
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무명선수 쇼터가 한 말 「마라톤은 체력 대(對)
심지(心志)의 비율이 40대60」이란 것을 떠오르게 하는 완주다.
유미리를 완주시킨 심지가 뭣일까. 일제 때 양임득(梁任得)이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장거리 선수가 있었다. 손기정옹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제패한 이듬해에 있었던 조선신궁(朝鮮神宮)육상경기대회
5000미터 장거리에서 15분28초4로 신기록을 세운 유미리씨의
외할아버지다. 12회 도쿄 올림픽의 마라톤 선수로 지목받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전쟁으로 중단되는 바람에 한을 품고 작고한 분이다. 이
외할아버지의 한을 풀고자 완주한 유미리이기 때문이다.
8년 전이던가, 「할아버지의 환상 속의 올림픽」이라는 일본 NHK방송의
기획취재를 위해 유미리씨가 한국에 왔을 때 맨 먼저 만난 분이 당시
84세의 손기정옹이었다. 외할아버지를 알고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손옹은 유미리가 한국말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지 「할아버지는
훌륭한 장거리 선수였다」는 말만 일본말로 하고 더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한다. 「내가 일본말을 한 것은 아가씨가 제 나라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의 손자가 찾아왔는데 통역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했으며 이 말을 듣고 유미리씨는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한다.
그 눈물은 어쩌면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의 원점 회귀에 자극받았을지도
모른다. 파친코와 경마에 빠진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술장사를 하다가 외간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남동생과 어머니 따라 갔지만
성장이 정상적일 수 없고, 이지메를 당하고 정학을 당하고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으며, 자살도 기도했고 가출도 했다. 곧 그의 반생은
소설보다 기구했고 17세부터 쓰기 시작한 희곡과 소설들은 모두가
차별받는 교포의 정체성을 둔 갈등과 자신의 지리멸렬한 가족사의
반영이었다. 그리고 이번 마라톤도 기구한 일생의 원점 회귀라는 심지로
완주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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