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해인사 師僧’
초등학교의 수업 중에 탑브레이드 팽이를 돌리고 노는 아이가 있어
선생이 이를 압수해 두었다. 한데 자모 사이에 소문이 돌기를 선생이
탐을 내어 제 자식 주고자 그 팽이를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이 교육
부총리가 일선 학교를 돌면서 살펴본 사례 가운데 하나로 우리
일선교육의 썩어 있는 뿌리를 이에서 본 것이다. 군신(君臣) 간이나
부자(父子) 간 사제(師弟) 간의 버팀목은 신뢰와 권위다. 신뢰를 잃은
후에는 아무리 훌륭한 정치도 무의미하다. 갑오개혁 후 전혀 실천성 없는
개화 입법이 쏟아져나와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당황한 정부는
「동목이서(東木移西)」라 하여 동대문에 나무장대를 쌓아놓고
서대문까지 옮기면 어김없이 약속한 대로 서푼의 돈을 주어 상실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술수를 썼다.
집안에서는 무서운 사람 하나를 일부러 만들어 권위를 세우는 것이
가풍이요, 한 발자국 물러서 스승의 그늘을 밟지 않게 하여 권위를
세우는 것이 사도였다. 곧 수업 않고 노는 아이의 팽이 거둬간 것을 제
자식 가져다 주기 위한 것이라는 발상이나, 그 말을 곧이듣는 풍조는
사제 간의 신뢰와 권위의 완전 증발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 사제 간의 버팀목을 빗대는 우리말로 「해인사의 사승」이라는 것이
있다. 그 원전이 「청구야담(靑丘野談)」에 실려 있다. 합천 현감인
아무개는 나이 60에 아들 하나뿐인지라 과보호를 하여 안하무인이요,
어떤 스승도 깔보아 가르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해인사에
대사승(大師僧)이 있어 현감이 아이 맡아줄 것을 청하니 이 아이 살리고
죽이는 것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문서로 약정하고 맡았다. 이
아이는 절 안을 뛰어다니며 늙은 스님들을 능멸하고 욕하며 때리기를
방자하게 했다. 이에 사승은 아이를 잡아오게 하여 묶어놓고 생사 쟁탈의
문기를 보여주고 시뻘겋게 불에 달군 송곳 끝으로 넓적다리를 찔렀다.
중놈이 양반 능욕한다 하여 천번 만번 죽이리라 고함치던 이 아이는
기절을 하고 살아나더니 앙심을 품고 면학에 몰두, 천자문 통문을 3년
안에 떼더니 대과(大科)에 급제까지 했다.
지금 나라나 학교나 가정이 땅에 떨어진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일
없이 헛짓들만 거듭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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