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벼슬 客主

bindol 2022. 11. 27. 15:54

[이규태 코너] 벼슬 客主

조선일보
입력 2002.03.12 20:25
 
 
 
 


조선 팔도의 물화(物貨)는 배에 실려 한강을 거슬러 한양의 마포 서강
동막 뚝섬 송파 등 오강(五江)나루에 몰려든다. 이 나루에는 그 물화를
맡아 보관하고 거간하며 화주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객주(客主)가 있었다.
객주들은 소금객주 과물객주 시탄(柴炭)객주 등 물화별로 전문화돼
있었으며 그 중 이색적인 것으로 벼슬객주라는 것이 있었다. 은밀히
매매되던 벼슬을 거간하는 객주로 대체로 궁가(宮家)와 북촌(北村)
세도가들과 끈을 대고 그 가문이 필요로 하는 물화를 대주며 그 가문의
재물을 맡아 돈놀이를 해서 늘려주고 그 대가로 벼슬 거간을 해서 이득을
노렸던 무리다. 그러했기로 은밀히 「대비 친정댁 객주」 「육상궁네
객주」 「북촌 김대감네 객주」 등으로 불리었다. 특히 뚝섬의
여각(旅閣)이라는 호화 객주의 숙박업에 몰려드는 자들은 대체로
벼슬객주의 끈을 잡으러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한말 이 벼슬객주 가운데 소문난 이로 교사동(校寺洞) 안동 김씨
세도가의 집사 출신인 상쾌(上快)라는 이가 있었다. 한말 정치 사회
실태를 실명을 들어 적어남긴 윤효정(尹孝定)의 「한말비사(韓末 史)」에
이 상쾌의 출세 비결이 나온다. 김씨 세도의 핵심인 김좌근(金左根)의
집에서 마님의 밑 심부름을 하던 상쾌에게 저자에 가서 과일 하나
사오라고 시키면 여느 다른 종보다 한결 값싸게 상품으로 사오곤 했던
것이다. 마님의 눈에 들지않을 수 없는 상쾌였다. 실은 심부름을 할 때
제돈 몇푼을 얹어 보다 좋은 놈을 많이 골라 사서 바치기를 상습적으로
했기에 많은 종 가운데 신용을 독점할 수밖에 없었다.

마님의 신용으로 조선 팔도 360고을에서 밀어닥치는 뇌물 관리의
고(庫)직이가 되었고 이어 교사동 세도가문의 가산을 관리하는 집사로 그
세도가 고관대작들을 웃돌았던 것이다. 자연스레 벼슬길이 뚝섬객주를
통해 상쾌에 와서 닿았고 그는 치부하여 육의전(六矣廛)에서 손꼽는
상업자본가로 출세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오륜(五輪)처럼 게이트가 고리 져 나오더니 드디어는
집사 출신의 이수동(李守東)게이트에 휘말리고 있다. 크고 작은 벼슬길이
이 집사에게 집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말 세도의 상쾌와 다를 것이
없으니 악의 축이 아니라 악의 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