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걸레 스님
우리나라에 스스로를 미친 척 소외시켜 정상인이 아닌 아웃사이더로
자처하고 살았던 자회(自晦) 인맥이 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그러했고 정희량(鄭希良) 남효온(南孝溫) 이토정(李土亭) 김삿갓으로
불리는 김병연(金炳淵) 등이 그러했다. 세조의 쿠데타에 저항하여 반
미치광이로 여생을 살았던 매월당이 궁중에서 법회를 연다는 소문을 듣고
걸승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나 세조가 베푼 것임을 알자 궁을
빠져나왔는데 이를 안 세조가 뛰쫓게하자 시궁창 속에 들어가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세조의 흑심을 풍자하는 퍼포먼스였다.
조우(祖雨)라는 고승이 세조의 쿠데타에 동조한 한 정승으로부터
「장자(莊子)」를 배웠다 하자 매월당은 발바닥으로 먼지를 쓸어 밥 위에
쏟는 등 기행으로 일관했다.
「용재총화( 齋叢話)」에 보면 이처럼 자회로 일관한 스님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다. 조선조 초에 장원심(長遠心)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남녀
의복을 가리지 않고 입고 다니며 반상·빈부·내외를 가리지 않는 거리낌
없는 무애(無碍) 인생을 살았다. 그는 화장(火葬)인 다비(茶毘)가
취미라면서 화염 속에 싸였다가 빠져나와서는 슬퍼하고 있는 제자승들을
비웃기도 했다.
이 자해인맥의 현대판 아웃사이더랄 걸레스님 중광(重光)이 입적했다.
장원심이 다비가 취미였듯이 중광도 자살과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취미였으며, 죽거들랑 가마니에 둘둘 말아 새와 들짐승이 먹게하라던
유언을 남기고 이번에는 진실로 숨을 거둔 것이다. 그는 장원심처럼
누더기나 땟국이 전 아무 옷이나 가리지 않고 입고 다니며, 화폭에 붓을
내던지는 것이 걸레질이라며 쓸고 닦으며 살았다.
그는 장애인·매춘부와 어울려 살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산산 부서지고 없어서 너무 고독해서 춤을
추는 것이라고 자신의 기행(奇行)을 변명했다. 수도하는 여인을 보고
「까무잡잡한 게 참으로 맛있게 생겼다」하여 당황하게 하는 등 거름
없고 거침 없는 말들로 위선투성이인 세상을 사심없이 풍자하여 주변
유명 화가며 시인들과도 교류했다. 매월당처럼 시서화(詩書 )에도 능하여
「미친 스님」이라는 애칭으로 국제적으로도 알려져 있는 걸레스님이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링 린포체 스님 (0) | 2022.11.27 |
---|---|
[이규태 코너] 아빠 育兒 (0) | 2022.11.27 |
[이규태 코너] 호화 유모차 (0) | 2022.11.27 |
[이규태 코너] 벼슬 客主 (0) | 2022.11.27 |
[이규태 코너] 牛頭 人身 (0) | 202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