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삼족오(三足烏)

bindol 2022. 11. 27. 16:07

[이규태 코너] 삼족오(三足烏)

조선일보
입력 2002.02.27 19:16
 
 
 
 


고대 임금이나 귀족들은 죽어서 가는 저승에서도 이승과 똑같이
재현해놓고 영생하려 들었다. 그래서 같이 살 처첩이나 타고 다닐 말을
순장(殉葬)시키고 식량이나 세간살이도 무덤에 갖춘다. 그로써도
부족하여 일월성신(日月星辰)과 동서남북 방위를 무덤 속에 재현시켰다.
이 같은 무덤 속 이승의 재생은 고구려 고분들 벽화에서 완연하다.
동서남북 방위는 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
사신도(四神圖) 벽화로 표시하고, 성신은 별자리인 이십팔수(二十八宿)
벽화로 표시했다. 해는 그 속에서 산다는 세 다리 까마귀(三足烏)로
나타냈고ㅡ.

삼국시대의 한국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옛 도읍 나라(奈良)
아스카의 기토라 고분에서 사신도를 비롯, 평양 인근에서 관찰한 것 같은
별자리 그림이 탐지돼 왔는데, 이번에는 집안의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세 다리 까마귀 그림이 발견되어 고대 한국문화의 일본
유입의 증거로 굳혀지고 있다.

해 속에 삼족오가 있다는 것은 한나라 때 문헌에 자주 나오고,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해와 하늘을 나는 새를
동일시하는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다 하고, 이집트의 태양신이 독수리
머리를 하고 있음이며 인도에서 해를 뜻하는 파탕가는 바로 새를
뜻하기도 한다 했다. 중국에서 하필이면 까마귀를 해 속에서 보았는가에
대해 까마귀는 해가 뜨는 새벽에 사라지고 해가 지는 저녁에 나타난다는
습성이 연상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태양 속의 흑점이 검기에 새
가운데 검은 새로서 가장 가까이 사는 까마귀로 보았음직하다. 한데 왜
세 다리로 보았을까.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라는 문헌에 보면
음양설에서 양수(陽數)는 하나에서 일어나 셋에서 완성되기에 양의
대표격인 해 속의 까마귀는 다리가 세 개여야 한다는 것이다. 곧
음양사상의 합리화로 삼족오가 됐다는 것이다.

중국 신화시대에 해가 열 개나 떠 초목과 사람이 타죽어갔다. 이에
천제는 명궁 예로 하여금 해를 쏴 떨어지게 했다. 해를 쏘자 그
화살에 맞아 낙하하는 것이 다름아닌 황금색 세 다리 까마귀였다. 그렇게
아홉 마리 삼족오를 사살하여 살기 알맞게 했다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날아간 삼족오가 천년 무덤 속에서 부활한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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