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슬로 푸드

bindol 2022. 11. 28. 16:03

[이규태 코너] 슬로 푸드

조선일보
입력 2002.02.26 19:34
 
 
 
 


햄버거나 프라이드 치킨 같은 패스트 푸드가 마치 현대인의 조건처럼
세상의 젊은이들 간에 정착하고있는 요즈음 그 반대문화인 슬로 푸드가
각국에서 번져나가고 있다 한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에 반감을
가졌거나 전통문화에 자존심을 가진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일고 있는
이 문화운동은 이웃 일본에까지 번져 슬로푸드협회가 발족, 향토요리로의
회귀가 청소년 틈에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패스트 푸드는
미국에서 자동차 문화의 정착과 더불어 차 속에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수단으로 시작하여 기승을 부려왔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패스트 푸드의 유행을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사람들은 외식할 때마다 바가지를 쓴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나이프 포크 쓰는 법등 까다로운 식사 매너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패스트 푸드가게에서는 그러할 필요가 없어진 때문에
무섭게 번져나갔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의 영양학자 진 메이어는
패스트 푸드가 생기면서 미국사람의 허리 둘레가 늘었음을 통계로
증명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자동차문화와 아랑곳없는 원천적 패스트 푸드의
종주국이었다. 먹고 입고 사는 데 인간욕망을 극소화하며 살도록 가르친
유교의 가르침 때문인지 먹는 것도 질박하고 간편하며 빨리 먹도록 틀이
박혀있었다. 그래선지 한국식 패스트 푸드가 꽤 발달해있었다. 주식
부식이 범벅이 된 비빔밥은 한국적 햄버거라해도 대과가 없다. 거기에
밥을 국에 맒으로써 먹는 시간을 단축시킨 설렁탕 곰탕 육개장 하는
탕반이 우리나라처럼 다양하게 발달한 나라도 없다.

빨리 먹는 대신 그 음식을 먹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국처럼 오래
걸리는 나라 또한 없다고 본다. 김치 된장 간장 장아찌 젓갈 등 한국
전통 음식의 80% 이상이 몇 년 동안 삭히는 발효음식이고 보면
한국식품만한 슬로 푸드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상물림이라하여
할아버지·아버지가 먹고 물리면 형제 간이 먹고 다시 그 밥상을 종한테
물렸으니 식사 시작에서 그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따지면 대단한 슬로
푸드였다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한국음식을 뒤돌아보아 지혜를
재발견하는 슬로 푸드 시대가 개막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