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손바닥 벤처

bindol 2022. 11. 27. 16:06

[이규태 코너] 손바닥 벤처

조선일보
입력 2002.02.28 20:34
 
 
 
 

지문(指紋)을 감식하는 손가락 벤처가 나라 안을 시끄럽게 하더니
이번에는 장문(掌紋) 감식의 손바닥 벤처가 술렁대기 시작하고 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지문이나 장문이 같은 사람이 없다는
데 착안, 이를 범죄수사에 이용한 것은 1880년부터로 역사가 길지 않다.
이때 작가 마크 트웨인은 「신이 그사람의 동일인임을 증명한 유일한
신성한 흔적」을 범죄수사에 이용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했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전부터 세상 사람들의 지문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신분 증명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영향으로 낙랑(樂浪) 시대의 유적에서 지문이 찍힌 봉니(封泥) 곧
진흙 도장이 출토되고 있는데,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낼 때 이 지문의
흙도장을 찍었던 것 같다. 그래선지 우리나라의 지문이나 장문의 역사는
서양의 그것보다 앞선다. 옛날 재산문서를 보면 양반들은 화압(花押)이라
하여 서명 사인을 했는데, 이름이 없었던 부녀자나 천민인
노비(奴婢)들이 재산을 사고 팔 때에는 좌촌(左寸)이라 하여 왼손
중지(中指)의 첫 마디 지문을 찍거나 손도장(手掌)이라 하여 오른손
바닥의 장문을 찍었다.

1902년 지금 정동 교회 옆의 초가삼간을 팔았던 서소사(徐召史)도
매매문기에 손도장을 찍고 있다. 손도장은 문기에만 찍었던 것이 아니라
간절한 소원을 신불에게 빌 때도 소원을 간결하게 적고 그 아래 손도장을
찍어 발원을 하고 기도 끝에는 소지( 紙)를 했다. 신명에게 동일인임을
그렇게 나타냈던 것이다. 멀리 떨어져있는 낭군에게 기첩(妓妾)들이
변심하지 않고 건재하고 있다는 전갈을 보낼 때도 그저 손도장만 찍어
인편에 들려보냈던 것이다. 곧 손바닥 도장은 계약뿐 아니라 사랑이나
맹세를 약정하는 심약(心約)이나 신명과의 약속인 신약(神約)에도
써내렸던 조상들이었다.

한데 마크 트웨인이 지적한 대로 지문·장문은 범죄 감식수단이나 범죄
예방수단으로 악용해내렸고, 그래서 그 감식부서가 국가기관에 단일화 될
수밖에 없고 단일화할수록 권부만 매수하면 그에 따른 이권 수렴이
쉬워지기에, 벤처라는 미명의 악의 축이 손가락과 손바닥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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