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사라진 榜
한 사람에게는 세 개의 인생이 있다. 가족으로서의 위상을 말해주는
가족적 인생, 사회적인 위상을 말해주는 사회적 인생, 그리고
재력으로서의 위상을 말해주는 경제적 인생이 그것이다. 세 인생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만 가장 핵심인 사회적 인생의 갈림길이
방(榜)이었다. 출세의 첫 관문인 과거의 급락(及落)을 알려주는 인생
교차로의 첫 신호등이기에 그 방 아래에서 희비를 절감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줄안다. 1000여년간 그 희비를 관장해온 방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다. 휴대전화 문자서비스나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 학교문 앞에는
관습적으로 방을 내붙였을 뿐 통지기능이 증발하고 없고 아예 방을
붙이지 않은 대학도 늘어가고 있다 한다. 영상 통보가 믿기지 않은
연로한 부모가 확인하러 오거나 합격 기념 사진을 찍고자 한 두 사람만
어른거릴 뿐이라 한다.
돌이켜보면 대단한 우리나라의 방문화였다. 합격자 명단인 방을 높이
내거는 것을 괘방(掛榜)이라 하고 명단이 들어 있음을 참방(參榜)이라
했다. 참방을 확인하면 방꾼(榜軍)이라 하여 악소배(惡小輩)들이 떼지어
그 급제자의 집을 찾아가 계집종을 불러내어 마님에게 알려라 하며
내정으로 밀치고 들어가 악의 없는 횡포를 부린다. 반가운 소식이기에 이
난폭을 방임하는 정도가 아니라 곡식을 퍼주었고 주지 않으면 곳간에
들어가 약탈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친지 관원들이 찾아와 경하하는
영문(榮問)이 줄잇는다. 합격증서랄 홍패(紅牌) 백패(白牌)를
임금님으로부터 받기 이전까지는 급제자를 신래 또는
신은(新恩)이라 하는데 그 사이에 급제 선배들이 찾아와 후배 신래를 집
밖으로 불러내어 얼굴에 먹칠을 하고 모욕적인 시늉을 시키는
호신래라는 관행이 있었다.
궁에 들어 패를 받고 나오면 어사화(御賜花) 관모에 꽂고 사흘 동안
선배와 영문한 친지를 찾아보는 유가(遊街)를 한다. 고려 때에는
출제자와 급제자와 사이에 부자지연(父子之緣)이 생겼으며 조선조에는
더불어 급제한 동방자끼리 형제지연(兄弟之緣)이 생겨 더불어 급제한
동방자 아버지가 초상을 당하면 3년간 심상(心喪)을 입어야 했다. 곧
방은 붙이고 붙이지 않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훈훈한 부수문화를
탄생시켜 온 것이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눈물’ 소동 (0) | 2022.11.28 |
---|---|
[이규태 코너] 精子아빠 (0) | 2022.11.28 |
[이규태 코너] 햇빛 살인 (0) | 2022.11.28 |
[이규태 코너] 누더기 인형 (0) | 2022.11.28 |
[이규태 코너] 개팔자 (0) | 202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