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햇빛 살인

bindol 2022. 11. 28. 16:22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햇빛 살인
입력 2002.02.07 19:41:58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알제리의 해안을 산책하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에 타는 듯한 모래 위는 모든 것이 정지하고 있는 듯했다.저편에서 아라비아 사람 하나가 걸어오자 뫼르소는 막연한 권태를 이길 수 없어 권총을 발사했다.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다시 4발을 쏘았다. 그에게는 그 사람을 죽일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동기를 추구하면 햇빛이 자기로 하여금 살인케 했다고 일관했다. 부조리를 부각시킨 것이지만 인간의 무의식층에는 햇빛 거부의 원초 심리가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북쪽으로 갈수록 햇빛을 지향하고 남쪽으로 갈수록 햇빛을 거부하는 문화가 발달한다. 남쪽인 고대 이집트에서 해는 「하늘 바다에서 주검을 나르는 배」로 인식되었고 희랍신화에서도 헤라클레스가 광기가 발동하는 시기는 타는 듯한 한여름 대낮의 햇빛 아래에서였다. 그리고 삼손 등 신화시대의 영웅들의 죽음과 따가운 햇빛과는 연관이 있다. 뫼르소로 하여금 살인을 시킨 알제리는 이집트나 희랍과 같은 지중해의 작열하는 햇빛 지대다. 「탑」에 대한 연구저서를 낸 알렉산더는 태양 지향문화권에서는 탑이 하늘을 향해 치솟으려는 첨탑구조를 하고 태양 거부문화권에서는 층층이 탑개가 있어 지심 지향 구조라했다. 한국의 탑이 중층으로 된 데다 층층이 지붕이 달려 하늘 아닌 땅 밑으로 역학이 작용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무가인 본풀이에 창세 때 해가 두 개 있는 바람에 사람이 타죽자 천지왕이 아들을 시켜 하나를 없애 살기 좋게 했다는 대목이 있다. 눈의 흰자위에 핏기운이 도는 것을 삼이 든다했는데 과잉된 햇빛 탓이라하여 달도 없는 깊은 밤에 캄캄한 단지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낫는다는 속방도 있다. 곧 우리나라는 햇빛 지향문화권인 것 같지만 거부문화도 남아있는 완충문화권이랄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4년 동안 20개국의 자살률과 일조량과의 관계를 조사한 바로 가장 태양열이 높은 달에 20~50%의 자살률이 상승하고 있다 했다. 자살은 자신에 대한 살인이다. 뫼르소의 살인이 부조리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것이 되어 주의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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