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눈물’ 소동

bindol 2022. 11. 28. 16:26

[이규태 코너] ‘눈물’ 소동

조선일보
입력 2002.02.04 19:55
 
 
 
 


워낙 눈물이 많았던 나라라선지 흐르는 형태에 따라 다른 말을 썼던
조상들이었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체(涕), 갈라져 흐르는 눈물을
사(泗), 콧물과 더불어 흘리는 눈물을 이라 했다. 펑펑 쏟는 눈물이
누(淚)요, 눈물을 눈 가장자리에 고여두고 흘리지 말아야 하는 눈물을
누라 했으니 대단한 눈물 민족이었다. 이 눈물에 색깔까지 넣었다.
김인후(金麟厚)가 유배지에서 눈물을 읊고 있는데 「석양에 붉게 물든
눈물 아까워서 못 떨어뜨리겠네」 했으니 붉은 눈물이요, 감정이 결핍된
눈물을 하얀 눈물이라 했다.

억제가 심했던 옛 어머니들 눈물없이 못 살았다. 음식의 간(鹽度)을 볼
때 기억해두었던 눈물맛의 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생활의 지혜였다.
「눈물 서말 흘리지 않고 음식맛 제대로 못 낸다」는 속담마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항상 눈물을 준비해놓지 않을 수 없었던 여자의
일생이기도 하다. 눈물이 강요되는 제사노예(祭祀奴隷)였기 때문이다.
나올 리 없는 이 눈물을 위해 시집가는 날 어머니는 딸을 뒤란으로 살짝
불러내어 바지 허리춤에 조그마한 주머니를 채워주는데 이를
눈물주머니라 했다. 그 속에 후추씨앗이나 고추씨앗을 간 가루가
들어있었다.시집에 제사가 있을 때 울 일이 있으면 이 가루를 몰래
꺼내어 눈 가장자리에 바르면 눈물이 흐를 것이요, 이에 곡만 맞추면
울음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눈물주머니를 일용품으로 품고 다녀야
했을 만큼 눈물 친화 민족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만두게 된 다나카 외상이 흘린 눈물을 보고 고이즈미
총리가 한 말을 두고 소동이 벌어졌었다. 「눈물은 여자의 최대의
무기」라는 발언을 두고 여성멸시라 하여 여성의원 18명이 항의방문을
했고 예산위원회에서도 문제삼아 여성각료 4명에게 감상을 물어 화제가
되었다. 한데 「눈물은 보석」 「인격의 매력」 「인간성의
표출」이라느니 하며 경멸이 아니라는 충성발언으로 일관되었다. 더욱이
가와구치 환경장관은 「멋진 남성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것이 여성의
무기라는 말을 한 번 듣고 싶다」고까지 했다. 이에 총리는 이만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성이기에 훌륭히 환경장관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칭찬했으며 그런 일이 있은 후 외무장관으로 발탁되었으니 장관을
탄생시킨 여자의 눈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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