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단명 장관

bindol 2022. 11. 28. 16:31

[이규태 코너] 단명 장관

조선일보
입력 2002.01.30 19:52
 
 
 
 


갑오개혁 이래 일제의 강제 병탄에 이르는 16년 동안 서울시장이랄
한성판윤(漢城判尹)이 꼭 70명이나 바뀌고 있다. 한 판윤당 80일간씩
근무한 꼴이다. 갑오년 한 해만도 21명의 판윤이 갈렸으니 보름에 한
사람씩 갈린 셈이다. 이민승 같은 이는 판윤으로서 재직이 불과
이틀밖에 안 되었다. 비단 한성판윤뿐 아니라 다른 벼슬들도
한통속이었으니 나라를 위해 벼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벼슬이 있어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는 조상들의 맹렬한 벼슬 지향을
말해주는 것이 되며 단 며칠이라도 벼슬에 있고자 하는 이 한국인의
변수가 무엇이었을까.

벼슬을 했다 하면 속된 은어로 「눈꽃이 피었다」고 했다. 벼슬
잔치를 육화무(六花舞)라 속칭한 것도 눈꽃에서 비롯된 말이다. 눈꽃에는
꽃잎이 여섯 개 나있어 육출화(六出花)라 부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곧
벼슬에는 여섯 가지의 벼슬덤이 붙기에 그것을 얻고자 그토록 사죽을
못썼음직하다. 그 일출(一出)은 치부(致富)다. 1895년도 한성부의 1년
예산은 5416원이었다. 한데 그 예산에서 치러야 하는 한성판윤의 연봉은
2000원으로 총예산의 40%에 이른다. 벼슬아치의 돈벌이를 위해 벼슬이
있었다 해도 반론할 여지가 없다. 거기에 친계(親系) 8촌, 외가(外家)
4촌, 처가 3촌까지 먹여살리는 데 저지른 부정부패는 관습적으로
보장되었으니 벼슬은 황금이다. 이출(二出)은 그 벼슬이 단 하루로
그치더라도 벼슬 호칭과 그에 따른 영예나 예우가 평생 따른다는 것이요,
삼출(三出)은 죽어서도 묘비에 그 벼슬이 오르고, 사출(四出)은 족보에
벼슬이 올라 후손 대대로 그 벼슬의 덕을 본다. 오출(오출)은 벼슬과
더불어 부역이나 공역(貢役)을 면제받고, 육출(六出)은 사는 집의 칸수나
높이, 그리고 대문의 구조, 묘역의 넓이, 부인의 패션·헤어스타일까지
벼슬 품수에 따라 달라졌다. 이처럼 육출화가 피긴 하나 무상한
벼슬이기도 하여 떨어지면 녹아버리는 눈꽃에 비겼음일까.

엊그제 개각이 있었는데 현 정부 4년 동안에 교육부와 건교부는 7차례로
8개월 만의 경질이고, 통일부·법무부·복지부·노동부가 6차례 바뀌어
9개월 터울이요, 총 장관의 평균수명이 11개월로 전통 벼슬관의 잠재된
유전질을 보는 것 같아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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