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계약 연애
당나라 위고(韋固)라는 이가 밤중에 길을 가는데 한 노인이 달빛 아래
커다란 보따리를 멘 채 누워 책을 뒤지고 있었다. 그 보따리 속에 뭣이
들어있느냐고 묻자 붉은 끄나풀들이 들어 있다 했다. 뭣에 쓰는 끈이냐고
묻자 남녀가 부부로서 궁합이 맞았을 때 맺어주는 연(緣)끈이라 했다. 이
이야기가 씨알이 되어 중매쟁이를 월하노인(月下老人))이라 했다. 이
연끈을 얻어다가 좋아하는 여인과 발을 묶었으나 조석으로 싸움만 하고
끝내 파경하고 말았다. 이에 월하노인을 찾아가 항의를 했더니 뒤져보던
책을 내보이며 이 책에 적혀있는 맞는 궁합을 찾아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로할 연분이란 숙명적임을 말해주는 고사다.
우리나라에도 궁합을 나막신으로 비유하는 설화가 있다. 같이 살다가
사이가 삐걱거리면 궁합 나막신에 발이 맞지 않는 증거이니 무신(巫神)인
만명(萬明)에게 빌면 만명이 자귀를 들고 나와 나막신 깎듯 궁합을 깎아
맞추어 줄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플라톤은 「향연(饗宴)」에서 그의 연애론을 펴고 있다. 천지창조 당시
사람은 남녀의 성이 구별되지 않은 네 개의 발과 네 개의 손을 가진
몰골이었다. 여덟 개의 수족으로 만사에 민첩해지자 오만해져 이에 성난
신은 둘로 쪼개어 두 손 두 발에 남성 여성을 갈라놓은 것이다. 이렇게
반인간으로서 상실한 반쪽을 꾸준히 추구하게 되었고 그 흡인력이
연애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상실한 반쪽을 찾아 결합하면
베터하프(better half)가 되고 제 짝 아닌 남의 짝과 결합하면
비터하프(bitter half)가 되어 티격태격 싸움으로 지새운다는 것이다.
월하노인의 연끈이나 만명의 나막신이나 플라톤의 베터하프 모두가
진실한 배필을 찾는 데 서로를 익히 알 수 있는 시간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 검증 과정이 연애랄 수 있다. 지금 시한을 정하고
사랑의 행위까지 선을 그어놓고 사귀고서 이합(離合)을 자유롭게 하는
계약연애가 성행하고 있다던데 검증 과정을 자주 가질 수 있어 연분이나
궁합 베터하프에 보다 가깝게 찾아가는 방편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타적(利他的) 융합보다 타산적 즉흥적 향락적으로 흘러가 이기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큰 현대악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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