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백제성(白帝城)
세상 물정 모른다는 뜻의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말이 있다.
장강(양자강·楊子江)의 수원인 사천성 깊은 산골에 야랑(夜郞)이라는
미개국이 있었는데 한(漢)나라 사신이 처음 이 나라에 들렀을 때
「한나라가 우리나라만큼 크냐」고 물었다 해서 생긴 말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안녹산의 난에 연루되어 이 야랑국으로 귀양가면서
삼협(三峽)을 역류하면서 「사흘 아침 사흘 밤이 걸려/수염이
희어졌다」고 읊었는데 백제성에 당도하자 은사(恩赦)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돌려 「만겹 산들을 뚫고/하루아침에 삼협 천리 물길을
빠져나왔다」고 읊었다.
장강을 가로막는 삼협 서쪽 입구인 백제성(白帝城)은 중국의 서반(西半)
산간부를 지키는 요새로 이곳에서 500m인 강폭이 150m로 좁아지며 장강이
급류와 역류를 거듭한다. 백제성을 시성(詩城)으로도 부르는데 전기
이백뿐 아니라 두보(杜甫)가 거처했던 서각(西閣)이 남아있고
유우석(劉禹錫), 백거이(白居易),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육유(陸遊) 등 중국 역대의 명시인들의 연고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명승지요 「삼국지」의 3대 전쟁인 이능(夷陵)의 싸움에서 패배한 유비의
전방사령부가 있던 요새다. 삼협댐으로 수위가 올라가면서 수몰 직전에
있는 이 백제성의 그 화려한 유적들을 철거하는 폭파작업이 시작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배를 내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유비(劉備)를 모신 백제묘(白帝墓)가
나오는데 그 액자는 곽말약(郭沫若)이 썼다고 한다. 정전(正殿) 동쪽 벽에
「유비탁고도(劉備托孤圖)」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유비가 임종에
어린 아들과 제갈량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그 현장인
영안궁(永安宮)은 백제성 아래, 지금 봉절(奉節) 사범학교가 들어선
자리로 유적비만이 남아있음을 보았다. 패전 후 죽음을 예견한 유비는
어린 아들 유선(劉禪)과 제갈량을 불러놓고 「내 아들을 보좌하기에
족하면 보좌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대가 왕좌를 계승하시오」 하고
눈을 감았다. 혈육보다 민초 편에서 인재를 존중하여 민주정신을
군주주의에 수혈해서 유비가 우러름 받았고, 그래서 정신적 위상으로
높이 떠있는 백제성이 폭파당하고 있다 하니 무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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