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즉석 피임약
성관계 후 사흘 안에 두 차례 먹으면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약
「노래보정」이 발매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란해져 있는 성의식을
타락시킨다 하여 그 발매를 두고 많은 저항을 받아왔던 즉석 피임약이다.
성을 둔 종족보존의 회임(懷妊)과 환락도구로서의 피임(避妊)은 역사가
생긴 이래 반비례의 가치관으로 상충해왔으며, 이제 명분은 전자를
유지하되 실속은 후자가 판칠 수 있는 멍석을 깔아놓은 셈이 됐다.
피임의 역사는 회임의 역사와 더불어 했으며, 전자는 공개적인데 후자는
은폐적이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피임의 원시적 방법으로 질 속에
회임을 방해하는 물질을 미리 넣어두었다. 주로 해초를 썼고,
희랍·로마시대부터 해면(海綿)을 썼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허리춤에
달고 다니며 필요할 때 간편하게 썼는데 해면에 브랜디를 묻히면 그
알칼리성이 정자 죽이는데 위용을 부려 효과가 컸다 한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전부터 콘돔이 있었는데, 고무가 발명되기 전에는 베를 썼기에
성감을 감퇴시킨다 하여 번지지 않았다. 질외 사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통용됐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조선조 때만 해도 귀인이 지나가면 부인이나 딸로 하여금 성적인 공여를
하는 시숙(侍宿) 관행이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등극 전에
전라도 지방에 갔었을 때 그곳의 한 유지가 그의 딸로 하여금
시숙시켰다. 왕건은 아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지 질외 사정을 했다.
이를 눈치 챈 여인은 귀인의 씨받이를 위해 응급조치, 회임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등극 후에 낳은 아기의 얼굴에 주름잡힌 것 같은
돗자리 무늬가 나있어 습주(褶主)라 불렀다 했는데, 바로 질외 사정에서
생긴 것으로 야사는 적고 있다.
폴리네시아 등 남태평양에서는 각종 나뭇잎이나 껍질로 만든 피임약이
다양하게 발달했으며, 내복약이 듣지 않을 때에는 임산부를 나무에 묶고
장정이 태아를 압살시키거나 몽둥이로 패기도 하고, 노련한 산파가 피임
마사지로 자궁의 위치를 뒤집어 낙태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비인간적
낙태에서 여인을 구제하고자 상가 부인은 다섯 번이나 투옥을 당해가며
피임운동을 전개했었다. 윤리와의 몇 라운드에 걸친 싸움 끝에
「노래보정」이 탄생된 것이며, 앞으로도 몇 라운드의 윤리 갈등이
예상되는 즉석 피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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