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일본의 장보고비(張保皐碑)

bindol 2022. 11. 29. 16:03

[이규태 코너] 일본의 장보고비(張保皐碑)

조선일보
입력 2002.01.14 20:46
 
 
 
 


신라 영웅 장보고(張保皐)의 기념비가 불교국가 일본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엔랴쿠지(延曆寺)산문 앞에 엊그제 제막되었다.
이 절은 일본의 고승 엔닝(圓仁)이 삭발 득도하고 중흥시킨 대찰로,
지난번 일본 아키히토왕(明仁王)이 일본 왕족에 백제의 피가 흘러
들었다고 언급한 바로 그 간무왕(桓武王)이 절을 중흥할 때 시주를
하고, 또 그 임금상(像)을 받들어 모신 절이기도 하다. 그 엔닝과
장보고와의 연분은 이렇다. 엔닝이 임금의 칙명을 받고 당나라
불사를 순력(巡歷)하러 바다를 건널 때 황해 앞바다에서 역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했다.

엔닝이 부처님의 가호를 기도하는데 붉은 옷을 입고 하얀 날개를
단 신령이 나타나 험한 파도 속의 배를 무사히 해안에 인도한 것으로
돼있는데, 기록에 보면 한 신라배의 구조로 산동성의 등주(登州)
적산(赤山)아래 한 절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바로 적산 법화원(法華院)으로 신라원이라고도 불리는 신라 스님들의
신라 사찰이었다. 해상의 영웅 장보고가 사업의 번창과 무사안전 등
부처님의 가호를 빌고자 세운 절로,엔닝은 자신들을 구제한 것은
바로 이 법화원의 수호신인 적산명신(赤山明神)으로 판단하고 바로
이튿날 감사 불사를 올렸다. 엔닝이 돌아와 입적하면서 이 적산명신을
위한 선원 짓기를 유언했고, 그것이 엔랴쿠지 서쪽기슭을 차지하고
있는 적산명신사(赤山明神社)이며, 그 중 신라사(新羅社)가 있으므로
미루어 신라에도 보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제받은 엔닝은 이 절에서 한해를 보내며 신라 스님들과 더불어
야채를 가꾸고 산에서 나무를 했으며, 월식이 있던 날 밤 꽹과리 치고
재앙 없기를 빌고 있다. 추석도 맞고 있는데, 신라사람들이 성대하게
추석 쇠는 것을 보고 따져 물었더니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전승기념일이라고 말하더라고 순례기에 적고 있다. 엔닝은 새해 들어
장보고 대사에게 두 차례에 걸쳐 감사편지를 올리고 있는데, 자신을
구제해주고 이 적산원에 따뜻하게 보호해 겨울을 나게 해준 것과,
오대산(五臺山)순례를 마치고 돌아갈 때도 대사의 은덕을 입게 해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다. 엔닝 대사 탄생 1200년을 맞아 이 절에서는
장보고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그 내력을 적은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이니
1000여년 만의 보은이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