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動大門」
보물 1호인 서울 동대문(興仁之門)은 예부터 동대문(動大門)이란 별칭이
있었다. 아치형 석축 위에 세워진 다락이 본래부터 곧게 세워진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동쪽 하늘 위에 계시는
천제(天帝)에게 머리를 빳빳이 세울 수 없다는 경천(敬天)의 건축철학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여름에는 다락 목재의 팽창으로 바로
서고, 겨울에는 수축으로 기운다 하여 동대문(動大門)인 것이다. 이처럼
움직이는 동대문은 1980년 장기간에 걸친 측정으로 확인되었다. 한말
미국인들이 발행했던 잡지 'The Korea Review' 1901년 1월호에 보면
동대문이 동쪽으로 기우는 것을 견제하고자 길이 1마일 반이나 되는 굵은
삼 밧줄로 동대문 다락과 청계천 수표교 돌다리를 연결하여 더 이상
기울지 못하게 해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겨울에는 밧줄의 수축으로
기우는 것을 바로 세우고, 여름에는 밧줄이 팽창하여 느슨해지는 것으로
바로 서게 되는 역학을 활용했다 한다.
이 때문인지 동대문에 대한 풍수미신도 기우는 것과 연관되어왔다.
조선왕조 동안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동대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는 것이 그것이다. 정사가 어지러웠던 광해군 말년에 동대문이
서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났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났는데, 반정군(反正軍)이 동대문의 서쪽인
홍제원에서 군사를 일으켜 창의문(彰義門))을 통해 궁궐에 들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기운 것을 합리화했다. 한말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을 때
동대문이 남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났었는데, 난군에 쫓긴 명성황후가
변장한 채 동대문을 거쳐 남쪽인 장호원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한
것으로 합리화했다. 이래저래 동대문(動大門)이라는 인식이 한국인의
의식 속에 뿌리내려져 있었다.
지하철을 동대문 땅 밑으로 통과시키려 했을 때 문화재 파괴 행위라는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강행하더니, 4개 노선의 쉴새없는 진동과 주변에
고층 건물 건축이 많아져 동대문 기초 축단(築壇)에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균열이 생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대문(動大門)의 숙명의
21세기적 돌출이 임박한 느낌이다. 이제 지하철도를 옮길 수 없고
그렇다고 동대문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충격흡수의 과학적
대책만이라도 서둘렀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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