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채식 바람
중국에 「답파채원(踏破菜園)」이란 말이 있다. 채소밭을 짓밟아
부순다는 뜻인데 융숭한 음식대접을 받아 뱃속이 놀랐다는 치사말이다.
채식만하던 사람이 어느 날 양고기를 배불리 먹었더니 꿈에 오장(五臟)의
신이 나타나 양이 「채소밭을 짓밟고 있다(羊踏破菜園)」 해서 비롯된
말이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떠나가던 날 영문 모르는 찬이 건
밥상을 받은 심봉사가 「허 기름진 것 들어가면 배를 다치느라」고 한
말과 피장파장이다. 고기가 들어가면 배를 다친다는 발상은 바로
오장육부의 구조가 풀로 돼 있는 채식민족이라는 존재증명인 것이다.
한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채식문화가 발달한 채식민족임은 소장(小腸)이
여느 다른 민족의 평균보다 두드러지게 길다는 데서 완연하다. 풀의
섬유를 소화시키는데는 창자가 길어야 하며 초식동물일수록 창자 길이가
긴 이유가 이에 있다. 구황천초(救荒千草)라는 말도 있듯이 흉년에 먹는
풀까지 치면 가장 많은 풀을 먹는 민족이다. 심지어 외국의 약전(藥典)에
독초로 분류돼 있고 가축마저 못 먹게 하는 고사리를 우려 먹는 민족은
우리가 유일하다. 유럽의 미래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불로 행복약이라는
「소머」는 백가지 약초로 만든 백채환(百菜丸)이다. 이에 비해
정희량(鄭希良)이 만들어 복용했다는 불로 안심제는 천 가지 약초로 만든
천채환(千菜丸)이다.
세계에서 각광받는 한국의 고유음식인 고추장은 바로 채식을 위한
보조식품으로 발달했다. 세계 식품학자들이 인류에게 권장할 맛 가운데
삭은 맛과 고소한 맛을 들었는데 둘다 우리 채식문화에서 파생된 것이다.
채식의 싱싱한 신선미각을 가장 오래 유지시키는 것이 발효요, 발효에서
우러나는 맛이 삭은 맛이며 역시 초식하는데 맛을 보조해주는 것이
고소한 맛이기 때문이다. 영어나 일본어에서 고소하다는 맛을 나타내는
독립된 말이 없으며 참깨에서 나는 맛이라고 하는 것만 미뤄 봐도 고소한
맛은 초식문화의 특허 맛이다. 신년 들어 몇개 방송들에서 채식의
건강과의 함수며 중요성을 집중 방송하자 시중에 채식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 갈지 모르지만 한국인의 원형질에
일시나마 회귀한 것 같아 뿌리를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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