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대졸주부의 방화
어릴적 동네 아이와 놀다가 싸우면 지나가던 어른이 뜯어말리고 길에
버려진 새끼토막이나 짚신 짝을 주어오라 시켰던 기억이 난다. 이
지푸라기를 쏘시개로 하여 불을 피우고 싸운 두 아이에게 그 불을 쬐도록
시켰던 것이다. 전래된 작은 화해의식인 것이다. 못마땅하거나 언짢거나
성이 나거나 샘이 나거나 몹시 그립거나하는 비정상적인 마음의 발동을
화라 한다. 화낸다, 화풀이 한다, 화가 치민다는 화가 마음의 불인
화(火)에서 비롯된 말이고 보면 이 작은 화해의식은
이화제화(以火制火)ㅡ 불로써 불을 끈다는 것이 된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첼 소나타'에 질투에 불 타올라 아내를 죽인
주인공이 격정을 가눌 길이 없을 때마다 종이 나부랭이를 찢어 불을
지르고 있다. 이화제화로 이지러진 마음을 조율했음은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정신이상 환자를 다루는 무당굿에 타포(打匏)와 소지가 있는데 헌
바가지를 모두어 놓고 환자로 하여금 지게 작대기로 그 바가지들을
두들겨 깨뜨리게 하는 것이 타포굿이요, 조선종이 한 장씩 33장을 낱낱
불 질러 날리는 것이 소지굿이다. 타포의 폭음과 소지의 화염으로 마음
속의 화를 무산시킨다는 심리요법일 수 있다. 인체의 생리에 외부로부터
심리적 충격을 받으면 이를 동요로부터 유지하려는 호메오스타시스 곧
항상유지(恒常維持)라는 기능이 발동한다고 한다. 외부 충격이 너무 커
항상유지 기능을 조율하기 힘들 때 그 보강수단으로 파괴와 방화를
수반시켰다는 것이 된다. 이민 주부가 향수가 엄습할 때마다 방화를 한
사례며 어머니가 너무 완벽한 가문의 아가씨일수록 연속방화 빈도가
높다는 보고도 있다.
보도된 바로 연속방화범으로 검거된 20대 대졸 주부는 남편이
실직당하거나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거나 카드빚이 쌓이거나 남편
이력서가 반려당하거나 할 때마다 요동치는 항상유지 기능을 방화로
유지했다는 발언을 했다. 그 불꽃을 볼 때마다 괴로움이 사라지고 희열에
젖었다고도 했다. 연속방화범죄는 이제 보험을 타거나 범죄 현장을
은폐하려는 수단이거나 또 개개인의 심리적 결함에서 온다는 것은 고전적
해석이요 복잡 다난해진 사회심리와 맥락되어 한결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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