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편식(偏食) 입시

bindol 2022. 11. 29. 16:26

[이규태 코너] 편식(偏食) 입시

조선일보
입력 2002.01.03 19:54
 
 
 
 


네팔 히말라야 지역을 걷다보면 염소장터를 이따금 볼 수 있다. 비탈이
심한 데다 식생이 각박한 이 고산지대에서 방목할 수 있는 유일한 짐승이
염소다. 한데 그 값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덜 나가는 것에는 아랑곳없이
그 염소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가파른 산비탈에 방목을 하면
예외 없이 풀을 뜯어내리는데 이를 하향양(下向羊)이라 한다. 이를
먹어내리지 못하게 채찍질하여 풀을 뜯어먹어 오르는 상향양(上向羊)으로
고쳐놓지 않으면 내내 버릇을 못 고치고 만다 한다. 하향양은 당장
편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식생이 그치는 비탈의 바닥에 이르고, 또
대다수가 하향을 하기에 경쟁이 심해 굶주림이 가속되지만 상향양은 당장
힘드나 수가 적어 식생도 풍족하고 넓은 초지에 이를 수 있기에 생명도
길어지고 살이 찐다. 그래서 상향양은 하향양보다 두 곱절 세 곱절
비싸게 거래되고 있음을 보았다.

대학 입학 수능시험 과목을 수험생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입시제도
개혁안을 보고 이 히말라야 염소가 떠올랐다. 히말라야의 아기 염소들이
산 비탈에 놓아두고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하향을 선택하듯이 미성년인
수험생들도 편하고 수월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요, 그러고 보면 자기
위주의 지식 편식을 하게 되고, 하향양들이 과당경쟁을 하듯이 경쟁이
혹심한 데다 사회가 요구하는 그릇 미달의 인간을 양산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교육을 뜻하는 에듀케이션의 말뿌리는 「보이지 않고 나타나
있지 않은 자질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데 있다. 자가 선택은 당장
수월한 하향을 선택하는 것이 되기에 무한 잠재 가능성을 영원히
매장시키는 비교육적 처사랄 수도 있다.

「뷰리당의 나귀」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 나귀 앞에 당근을 등거리에
여기저기 놓아두면 이 노새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굶주려 죽는다는 중세
철학자 뷰리당의 말에서 비롯된 교훈이다. 노새를 방향에 따라가게
하려면 당근 아닌 채찍이어야 한다는 이 속담은 지금도 진리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래의 지적재산인 학생들에게 역대 교육정책은 당근만을
놓아주어왔다. 그리하여 힘이 드는 기초과학을 불모화하더니 이제 지식
편식으로 하향양을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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