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당당해진 개고기

bindol 2022. 11. 29. 16:25

[이규태 코너] 당당해진 개고기

조선일보
입력 2002.01.04 20:00
 
 
 
 


한국에도 다녀간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어느 나라 문화건 3단계로
발전을 거듭해나간다고 했다. 1단계는 자기네 전통문화만을 고집하는
전통문화시대다. 세상이 좁아지면서 우세한 외래문화를 흠모하고 따르려
하며 1단계 문화를 열등시하는 2단계 외래문화시대에 접어든다. 2단계에
성숙하다 보면 자기네 전통문화가 열등한 것이 아니라 존재 이유가
드러나 보이고 이를 외래문화에 발전적으로 절충 융합시키려 든다. 이를
미드는 3단계 동일성 문화시대라 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외에서 한국 개고기 음식문화를 둔 시비가 재연되어
왔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도 이 개고기 시비가 치열했었다.
88올림픽 때는 개고기 문화에 대해 수세요, 외국인 앞에 보이지 말고
삼가는 쪽으로 여론의 대세가 기울었었는데 이번 월드컵 때는 당국자나
지도층이나 일반시민이 한결같이 외국에서 관여할 것이 못된다는 당당한
자세가 돋보였다. 그렇게 달라진 이유가 뭣이냐고 물어 온 외국기자도
있었다. 이같은 추이는 외국의 여론에서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미국의
「뉴욕타임스」, 「헤럴드 트리뷴」, 일본의 「아사히」
「마이니치」신문, 홍콩의 시사주간지에 이르기까지 개고기 문화 배격은
고유 문화를 둔 문화간섭이요 문화제국주의이며 자신들의 별난
음식문화를 생각하지 않은 독단으로 간섭할 일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
역시 88올림픽 때와는 크게 달라진 추세다.

두루마리를 통해 들여다보듯 일점만 보이고 그 밖은 보이지 않는 안과의
질병으로 시야암점증이라는 게 있다. 자국 위주로 사물을
보는 강대국의 맹점으로 곧잘 인용되는 문화병이기도하다. 88년까지만
해도 선진국들은 시야암점증에 걸려 있었으며 한국인은 전통문화를
열등시하는 2단계 외래문화시대에 처해 있었기에 개고기 문화에 공세가
드세였고 이에 한국인은 약세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세계화도 진행되고
자타의 문화 동일성을 존중하는 3단계 문화시대로 접어들어 동일성
문화에 떳떳해지고 문화 형평성에서 편견을 가려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것이다. 개고기 문화를 추키려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의 자국 타국문화를
보는 성숙을 짚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