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못돌아온 할머니들

bindol 2022. 11. 29. 16:32

[이규태 코너] 못돌아온 할머니들

조선일보
입력 2001.12.27 20:21
 
 
 
 


일제 때 강제 차출되어 곤욕을 치렀던 위안부 가운데 올해만도 5명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엊그제 추모회를 가졌다. 70대 후반인 해외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그리운 고향에 못 돌아오고 14명이 현재 중국에
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중국전선에 차출된 위안부가 그만하다면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전선에 차출되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많은
위안부가 있었을 것임을 미루어 상상할 수 있다. 어쩌다가 어릴 때
떠난 그리운 고향에 못 돌아오고 낯선 이역의 넋이 되어 영원히
중공(中空)을 울어 헤매는 길을 택해야만 했을까.

병자호란 때 오랑캐들은 전리품으로 여인들을 납치해 갔었다.
남다여소(男多女少)로 늙는 홀아비가 상식인 데다 형제들이
한 아내와 더불어 살만큼 여자가 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납치해
간 사람들을 노예시장에 내어다 수요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넘겼던
것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지 4년 후 심양에 사신길 가던
이원진(李元鎭)이 국경촌에 가설된 조선인 포로수용소의 견문을 적어
남겼다. 짐승우리처럼 목책으로 얽은 속에 70여명이 갇혀 살고
있었는데 조선사행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쫓아나와 고함을 질러
댔다.

 

'나는 아무 고을 아무개의 딸이오 ''나는 어느 고을
진사 아무개의 아내요 '하며 소식을 전해달라고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도망치다 잡혔다면서 귀를 잘리우고 다리살을 잘리운
단근(斷筋)질을 당하기도 하여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렇게 갇혀있다가 속전(贖錢)을 내거나 도망쳐 돌아오면 반겨야
했을 가족들은 문안에 들여놓기를 주저했다. 외간남자 옷깃만
스쳐도 자결할 충분한 이유가 됐던 세상인지라 하물며 되놈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여인임에랴 …. 그래서 돌아온 여인들은 그 길로
몸을 던질 깊은 소를 찾아갔던 것이다. 이 윤상(倫常)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고향을 등지고 오랑캐 땅에
눌러살아야만 했으며, 중국 동북지방에는 지금도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고려보(高麗堡)라는 지명이 많이 남아있음을 본다.

시대는 달라졌다 해도 광복 후 위안부들이 고향에 돌아가기에는
윤상의 벽이 너무 높다고 여겼기로 눌러살기로 작심했을 확률이 높다.
더 늙기 전에 환국을 주선하여 한을 풀어드림으로써 역사에
진 단장(斷腸)의 빚을 탕감해드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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