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의사 인성고시

bindol 2022. 11. 29. 16:33

[이규태 코너] 의사 인성고시

조선일보
입력 2001.12.26 20:17
 
 
 
 


일본에서는 의사자격 국가시험 이전에 환자를 대하는 인성시험을
내년부터 실시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환자를 얼마나 존중하며
정성을 들이고 친근감이나 신뢰감으로 교감하고 있는가 여부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시범실시해 본 결과 의대 졸업생 100명 중 5명꼴로
학과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도 인성시험에서 낙제했다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인간적 교감은 우리 의료계가 안고 있는 누적된
폐단으로 귀를 솔깃하게 하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조 역대 임금 가운데 세조만큼 신병으로 고생을 많이 한 임금도
없을 것이다. 팔도에 소문난 온천을 돌아다니며 요양을 했고 명의라는
명의는 모두 불러 접해 보았다. 그 풍부한 체험 끝에
'심의론(心醫論)'을 공포, 의원들의 인성 측면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계몽했다. 세조는 의원의 우열을 10등급으로 갈라 풀이하고
약을 잘 쓰는 약의(藥醫)는 3등의원이요, 먹는 음식을 잘 조절하는
식의(食醫)는 2등의원이며, 뭐니 뭐니해도 1등의원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심의(心醫)라 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기운이
안정이 되고 기운이 안정되면 병에 차도가 생긴다는 것이다.

 

의료 민간속담에서도 의원의 인성이 강조돼 왔다. 곧 의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의 순서로 일구(一口)이족(二足)삼약(三藥)ㅡ
육기(六技)가 그것이다.

훌륭한 의원의 조건에서 병 낫게 해주는 기술이 뛰어난 것은
여섯 번째요, 약을 잘 쓰는 것은 세 번째며, 부지런히 찾아가
환자와 자주 접하는 발(足)이 두 번째요, 가장 훌륭한 의원의
조건은 환자와 꾸준한 대화로 신뢰를 주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말(口)이라는 것이다.

숙종 때 어의(御醫)로 발탁된 백광현이라는 의원은 환자가 있으면
친소(親疎)반상(班常)빈부(貧富)고하(高下)를 가리지 않고
조부모뻘이면 친조부모처럼, 부모뻘이면 친부모처럼,
형제뻘이면 친동기간처럼, 아들 손자뻘이면 친자식 친손자처럼
대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정성과 기량을 다했기로 의약으로
병을 고치질 않고 마음으로 고친다고 소문나 있었으니,
바로 심의(心醫)의 전형이었다 할 수 있다.

무섭게 발달하고 있는 의술에서 전근대적으로 남아있는 분야가
바로 인성분야다. 대학에서의 체계적인 인성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