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8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8] 현대문명이 사라진다면?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8] 현대문명이 사라진다면?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7.19 03:00 기원후 476년. 게르만족 출신 로마 장군 오도아케르는 어린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몰아내고 ‘이탈리아의 왕’이 된다. 황제의 유물을 동로마에 보내며 그는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제국의 왕관은 필요 없다고. 물론 ‘로마제국’ 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여전히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수많은 동로마 제국 황제들은 과거 제국의 부활을 꿈꾸게 된다. 황제들뿐만 아니었다. 1453년 오스만 터키인들에게 함락당할 때까지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자신을 여전히 ‘로마인’이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마는 몰락했고, 역사에서 사라진 건 ‘..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7] 초거대 인공지능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7] 초거대 인공지능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7.05 03:00 1843년 처음 발행한 영국 경제 매거진 ‘이코노미스트’와 1886년 미국에서 창간한 여성 패션 잡지 ‘코스모폴리탄’.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 잡지라는 점을 빼면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두 매거진 모두 비슷한 미래 비전을 하나 소개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을 사용한 매거진 커버 디자인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코스모폴리탄과 이코노미스트는 표지 디자인을 위해 ‘초거대 기계 학습’을 사용했다. 초거대 기계 학습이란 무엇인가? 기계에 세상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던 ‘기호 기반’ 인공지능과는 달리 딥러닝 같은 기계 학습 방식은 주어진 ..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6] 22세기를 위한 정의론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6] 22세기를 위한 정의론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6.21 03:00 어쩌면 1만2000년 전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 단위로 사냥과 채집을 하던 인류에게 ‘정의’라는 단어는 무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이방인들과 공동체를 유지해야 했던 인류는 본질적 문제를 하나 발견한다. 바로 능력과 선호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공동체 생산물이 능력과 노력에만 따라 나눠진다면,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이 발생한다. 반대로 능력과 노력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물을 배분한다면? 노력한 개인의 자유가 무시된다. 같은 사람들이 다른 대우를 받는 건 정의롭지 않지만, 반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대우..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5] 세상이 바뀌면 생각도 바꿔야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5] 세상이 바뀌면 생각도 바꿔야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6.07 03:00 정말 저런 옷을 멋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머리는 또 왜 저런 걸까? 가끔 옛날 사진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분명히 20년, 30년 전엔 최신 패션이었을 옷들. 이제 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다. 옷과 헤어스타일만이 아니다. 표정도 무언가 어색하고, 분명히 나로 보이는 사진 속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은 외모와 패션의 기준만이 아니다.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 역시 변하는 게 당연하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대한 우리의 과거 믿음도 말이다. 1990년도 월드와이드웹(WWW)의 등장과 함께 인류가 하나의 거대한 정보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4] 디지털 영생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4] 디지털 영생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5.24 03:00 이집트 피라미드, 진시황제의 무덤, 트럼프 타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후세대에 몸과 이름을 남기려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겠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죽는다. 네안데르탈인들조차도 ‘죽음’을 인식했을 것이다. 조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최근에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라는 존재 역시 사라지지 않을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 어차피 죽는다면 열심히 사냥을 나갈 필요도,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집단 무기력을 막기 위한 진화적 해결책이 필요했다. 저승에 대한 믿음이 첫 시도였..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3] 나의 현실, 우리의 현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3] 나의 현실, 우리의 현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 교수 입력 2022.05.10 03:00 가상현실, 증강현실, 메타버스….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중심으로 ‘현실’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아날로그 현실’이 아닌 새로운 ‘디지털 현실’을 구현해 새로운 소통과 거래의 플랫폼으로 제공하겠다는 생각이겠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진다.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걸까? 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일상적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눈을 뜨면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이 현실이지 않은가? 현실이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니었던가? 유럽인들이 ‘알 하젠’이라..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2] 각자의 진실이라는 궤변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2] 각자의 진실이라는 궤변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4.26 03:00 21세기에 다시 핵전쟁의 두려움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러시아. 신기하고도 불안한 현실이다.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몰락하고 러시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한국인들이 편하게 러시아로 관광과 유학을 가고, 러시아인들 역시 한국에서 사업과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러시아가 이제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우리는 유럽 한복판에서 다시 최악의 도시전과 제노사이드(집단 살해)를 목격하고 있다.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단순히 푸틴이라는 한 정치인이 이성을 잃은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푸틴의 정책을 철학적으로 뒷..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 디지털 외로움과 전체주의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 디지털 외로움과 전체주의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입력 2022.04.12 03:00 철학자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고향 독일의 민주주의 몰락과 나치당 집권,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했다. 홀로코스트 기획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추후 목격하며, 아이히만 역시 너무나도 하찮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악의 평범함’을 주장한 그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체주의는 인간의 외로움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말이었다. 왜 외로움이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동물보다 특별히 더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기에 협업만이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생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