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349

[만물상] 기구한 이태원

[만물상] 기구한 이태원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22.11.01 03:08 퇴근 때 종종 서울 시청 근처에서 출발해 남산을 넘어 뛰어간다. 하얏트 호텔에서 용산구청까지 이태원의 긴 내리막길을 거치는데 풍경이 다채롭다. 한국 최고 부잣집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내려갈수록 집이 작아지다가 원룸 서민 동네로 끝난다. 부자와 자취생,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 산책하는 반려견조차 각양각색이다. ▶이태원은 일제가 남산에 도로를 내고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면서 주택가가 됐다. 지금 하얏트에서 회나무로로 이어지는 부촌 지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산기슭엔 해방 후 서민들이 몰려들었다. 경리단길 일대가 그곳이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성된 외국인 유흥가가 이태원로 번화가의 시작이다..

만물상 2022.11.01

[만물상] 변질된 핼러윈

[만물상] 변질된 핼러윈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22.10.31 03:08 핼러윈데이는 원래 종교 축제다. ‘모든 성인의 날’이란 기독교 축일이 아일랜드 전통 축제와 섞이면서 1000년 전부터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도에 국한된다. 같은 기독교라도 유럽 대륙의 가톨릭, 동유럽 정교회 나라에선 여전히 낯설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매우 특이하다. 종교적 의미는 사라지고 청춘들의 열기가 분출하는 축제로 변했다.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임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2.10.3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핼러윈 파티가 ..

만물상 2022.11.01

[만물상] 블라인드 채용

[만물상] 블라인드 채용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2022.10.29 03:18 “아버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 역할을 맡은 배우 김광규가 학생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손찌검을 하면서 내뱉어 유명해진 대사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힘들게 일해서 돈 벌어오는데, 공부 안 하고 철딱서니 없이 살 거냐고 남고생들을 마구 몰아붙이는 장면이었다. 이 대사가 취업 현장에선 취업 준비생들에게 특히 좌절감을 안겨주는 갑질 질문으로 통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성장해온 MZ 세대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 ‘대물림 사회’의 불공정에 특히 분노한다. 2년 전 한 구인 구직 업체가 조사했더니 취준생 39%가 ‘채용 과정에서 불공정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족 관계, 학벌 등 ‘직무와 관련 없는 ..

만물상 2022.10.29

[만물상] ‘逆월세’라는 기현상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逆월세’라는 기현상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2.10.26 03:08 /일러스트=박상훈 유럽, 미국에는 전력 생산 기업이 전기 구매자에게 웃돈을 주고 전기를 파는 ‘마이너스(-) 전기료’ 제도가 있다. 바람이 너무 불거나 일조량이 급증해 풍력·태양광 발전량이 급속히 늘 때 주로 적용된다. 전력거래소는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전기 요금에 마이너스 가격을 적용해 공급량을 줄인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초기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배럴당 -37달러)를 기록했다. 원유 저장소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원유 생산 기업들이 웃돈을 주고 재고를 넘겼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복지 정책 수단으로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개..

만물상 2022.10.26

[만물상] 태국만도 못하다는 일본 월급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태국만도 못하다는 일본 월급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22.10.22 03:08 인생에서 가장 추운 한 해를 보낸 곳은 유학 시절 일본 도쿄의 북향(北向) 집이다. 어찌나 각도를 태양 반대 방향으로 정확히 맞췄는지 사시사철 햇빛이 한 조각도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내 전기장판 위에서 떨면서 잤다. 난방 시설이 없는 비좁은 방 하나와 부엌, 화장실이 전부였지만 이런 집 월세가 일본 신입 사원 월급의 절반 가까이 됐다. 일본을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이라고 한다. 살아보니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금 일본의 대졸 초임은 20만엔 약간 넘는다. 200만원 정도다. 30년 전과 비슷하다. 고졸 초임은 최저임금과 거의 같아졌다. 경제 논리론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초임만 낮..

만물상 2022.10.22

[만물상] 은마 아파트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은마 아파트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2.10.21 03:08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 자리는 비가 조금만 와도 물에 잠기는 저습지였다. 1970년대 서울시의 영동 구획정리로 네모반듯해진 이 땅을 세무공무원 출신 한보주택 정태수 회장이 헐값에 사들여 4400가구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정 회장은 “물과 바람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서 반드시 성공할 명당”이라고 했다. 1978년 아파트 분양 당시 오일쇼크가 터지고 아파트가 안전자산으로 주목받으면서 100% 분양에 성공, 1000억원 넘는 현금을 손에 쥐었다. 정 회장은 “목수가 자기 집을 지으면 망한다”면서 별도 사옥을 짓지 않고 은마아파트 상가를 그룹 사옥으로 썼다. ▶사통팔달 대로변에 자리 잡은 은마아파트는 당시만 해도 보일러와..

만물상 2022.10.21

[만물상] 정치 ‘탑압’

오피니언만물상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정치 ‘탑압’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2.10.19 03:18 최근 책을 읽다 ‘르포이센’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프로이센’의 오자이지만, 이런 오류를 찾아내는 게 명백한 오탈자 찾기보다 더 어렵다. 뇌과학에선 ‘뇌가 가진 선입견이 시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객관적 정보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뇌가 대상의 기억을 떠올려 연상하는 과정이다. 뻔히 눈앞에 있었던 것을 못 봤다고 하는 사람도 나온다. 여러 사람이 공 뺏기 놀이를 하는 와중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을 그들 가운데 들어가게 한 실험이 있었다. 놀이가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물었더니 60%가 “고릴라가 있었느냐?”고 했다. ▶공에만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못 보는 현상을 ‘무주..

만물상 2022.10.21

[만물상] 네옴시티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네옴시티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2022.10.18 03:08 몇 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여성 형상의 세이렌을 지워버린 스타벅스 로고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사우디의 ‘와하비즘’ 전통 때문이었다. 사우디에서 근무한 적 있는 전직 외교관은 “아내 혼자 외출이 안 되니 사우디 근무가 아프리카 빈국에서 근무할 때보다도 힘들고 갑갑했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사우디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온 주인공이 무하마드 빈 살만(37) 왕세자다. 국제 외교가에서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 또는 ‘MBS’라고 불리는 실세 중의 실세다. 지난달 빈 살만이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래형 신도시 ..

만물상 2022.10.21

[만물상] 우크라 신병의 철모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우크라 신병의 철모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2.10.17 03:08 주말 신문 1면에 우크라이나 신병의 뒤통수 사진이 실렸다. 영국에서 훈련받던 중 철모를 썼는데, ‘후회는 없다’ ‘자비도 없다’라고 위아래 두 줄이 쓰여 있었다. 결연하고 비장했다. 후회가 없다는 건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군인으로서의 각오다.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건 조국 땅을 침범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러시아군을 결단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사실 ‘철모(鐵帽)’가 정확한 말은 아니다. 총알과 파편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군인 머리를 보호하려는 헬멧은 원래 쇠로 만들었다. 그래 철모였다. 창칼로 싸웠던 시대에 투구를 썼던 것이나 비슷하다. 약점을 보완하려고 지난 30~40년..

만물상 2022.10.21

[만물상] 보디 패커

오피니언만물상 [만물상] 보디 패커 최원규 논설위원 입력 2022.10.15 03:18 미국에서 하늘길은 물론 바다 밑으로, 땅 밑으로 은밀하게 운반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마약이다. 미국 정부가 아무리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도 중남미 마약 조직들은 새 운반 루트를 개발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멕시코 마약왕’으로 불린 호아킨 구스만이다. 2015년 미국 법원에 제출된 문건엔 그가 마약 밀반입을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에 땅굴을 파고, 잠수함·항공기까지 이용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실제 적발된 내용도 대담하기 그지없다. 2011년 미국 경찰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 사이에서 길이 600m 마약 운반용 땅굴을 찾아냈는데 여기엔 환기 시설은 물론 운반용 전동 수레가 달릴 수 ..

만물상 202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