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박종인의 땅의 歷史] 군산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100년 전의 기억

276. 근대사가 응축된 군산 기행① 그들이 기억하는 군산 군산항. 1899년 대한제국이 이 항구를 개항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군산을 스쳐갔다. 서글픈 식민의 풍경 속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던 조선사람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조선을 찾은 일본 서민과 자본가까지. 군산이라는 도시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애써 지우지 않고 21세기 대한국인들이 볼 수 있도록 보존해놓았다. /사진가 서경석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0.13 03:00 * 유튜브 https://youtu.be/NCWFp7z3F0k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을 항구도시 군산으로 많이들 가봤으면 좋겠다. 되도록이면 근대사 공부를 하고 가면 좋겠다. 그러면 미곡(米穀)을 수탈당한 군산항은 평화로운 산책로로 변해 있을 것이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대한제국 황실이 설계한 식민 수탈 시스템

277. 근대사가 응축된 군산 기행 ②황제 지주제를 설계한 대한제국 군산 들판. 지평선이 보이는 이 들판은 고려 말 왜구부터 구한말 근대 일본까지 조선을 침략하는 큰 원인이 됐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0.20 03:00 * 유튜브 https://youtu.be/kcpRKNCWb8I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구와 군산항 뜬다리 14세기 고려 내륙까지 쳐들어왔던 왜구(倭寇)가 노린 목표는 쌀이었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노리는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순신이 방어한 곳도 곡창 지대 호남이었다. 고려 말 호남 세미(稅米)을 모은 진성창이 군산에 있었고, 진성창을 공격한 왜구를 최무선이 물리친 진포해전도 군산에서 벌어졌다. 전북 군산항에는 ‘뜬다리’라고 불리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박종인의 땅의 歷史] 식민시대, 그 이중적인 삶과 기억과 군산에 남은 흔적들

278. 근대사가 응축된 군산 기행3(끝) 구마모토 농장과 의료 선구자 이영춘 군산 동국사. 1913년 구마모토 리헤이를 비롯한 군산 지역 일본인 시주로 만든 금강사가 원형이다. 지금도 대웅전을 비롯해 건물마다 그 원형이 남아 있다. 식민시대 탐욕으로 점철된 삶이 있었고, 단칼로 재단하기 어려운 삶이 있었다. 식민 본국 일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식민지 조선의 삶은 요동쳤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0.27 03:00 * 유튜브 https://youtu.be/pJkwNUOoK6c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세월과 공간을 넘어, 이성당 남원 사람 이석호는 일본 홋카이도로 이주해 살다가 해방 후 귀국했다. 군산 중앙통에 정착해 빵집을 냈다. 이름은 이성당(李盛堂)으로 지었다. 이씨가 ..

이 가을, 군위에서 우리는 철학자가 된다

[박종인의 사색 여행] 철학의 땅, 군위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0.29 03:00 빈 곳과 빈 곳 사이가 ‘공간(空間)’이다. 공간을 채우며 사람이 살다가 사람이 죽는다. 가끔 그 흔적이 남으면 기억이 되고 기억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이제 명상과 철학이 채운 공간, 군위(軍威)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경상북도 군위에서 겪은 사색과 철학 여행. 건축가와 조경가와 서예가와 철학하는 창업자가 만든 군위 수목원 '사유원'에는 팔공산이 있고, 가을을 맞은 느티나무 숲과 억새밭이 있고, 가을을 모르는 소나무 숲이 있고 방문객을 사색에 잠기게 하는 철학적 공간이 있다. 군위에 가면 사람들은 철학자가 된다. /박종인 기자 생과 사를 대면하는 철학, 사유원 김천에서 태어난 유재성은 6·25 때 아버지를 따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내 꿈은 조선 농촌을 갱생시키는 것이외다”

279. 친일파로 낙인찍힌 사회사업가 이종만 서울 종로구 견지동 NH농협 종로지점 건물은 1926년 ‘조선일보’ 사옥으로 지어졌다가 ‘조선중앙일보’ 사옥(1933), 1937년 이후에는 ‘대동광업주식회사’ 본사 사무실로 사용됐다. 대동광업 사장 이종만은 ‘소작농 없는 자작농의 조선’을 꿈꾸며 함남 영평금광 매각자본 155만원으로 농촌과 교육 갱생 사업을 벌였다. 해방 후 그는 금광이 있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는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1.03 03:00 * 유튜브 https://youtu.be/nDFb3tEgEOQ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인물 이종만 ‘남들은 이종만씨를 마치 조선의 로스차일드요, 카네기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외국은 수도가 둘이다. 평양에도 궁궐을 지으라”

280. 시대착오의 상징 평양 풍경궁① 충남 부여에 있는 신라 고찰 무량사는 멀고먼 평양에 있던 대한제국 궁궐 풍경궁과 인연이 있다. 풍경궁은 1902~1903년 “기자(箕子)가 문명과 예법을 전파한 평양에 두 번째 수도를 세운다”며 광무제 고종이 만든 궁궐이다. 총공사비 1000만 냥은 평안도 백성이 책임졌다. 1927년 경성으로 이건된 풍경궁 정문 황건문은 해방 후 동국대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71년 무량사에 목재로 팔려갔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1.17 03:00 * 유튜브 https://youtu.be/ZjIPU56hxvQ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71년 12월 10일 서울 동국대학교 정문으로 쓰이던 황건문(皇建門)이 해체되고 학생회관이 신축됐다. 해체된 황건문 ..

“백성에게서 갈취한 돈으로 남에게 빼앗길 궁궐을 짓는구나”

[박종인의 땅의 歷史] [281] 시대착오의 상징, 고종이 만든 평양 풍경궁 ② 1904년 3월 러일전쟁 종군기자인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은 대동문을 통해 평양성에 진입 중인 일본군 행렬을 목격했다. 헌종 계비 홍씨 국상 중이라 백립을 쓰고 있는 군중 속에 일장기가 보였다. /미국 헌팅턴대 도서관 잭 런던 컬렉션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1.24 03:00 * 유튜브 https://youtu.be/dRAcR5AcbG0 에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1904년 2월 29일 대한제국 황궁인 경운궁(덕수궁)이 전소(全燒)됐다. 새벽녘 함녕전 온돌에서 발화한 불이 온 궁전을 홀딱 태웠다.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은 그날 아침 고종은 “궁색하지만 반드시 중건하라”고 명했다.(1904년 2월 29일 ‘승정..

[박종인의 땅의 歷史] “공부하는 선비가 드물어 안타깝구나, 성균관을 보수하여라” - 1906년 4월 15일 고종

282. 평양 풍경궁③/끝 망국까지 성리학에 집착한 고종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 월대에서 정전인 근정전 지붕이 힐끗 보인다. 해거름에 서쪽에 해가 진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경복궁을 버리고 경운궁(덕수궁)을 황궁으로 삼았고, 경운궁에 기거하며 평양에 또 다른 궁궐 풍경궁을 건설했다.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는 ‘도리(道理)’였고,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에도 그는 “성균관에서 도리를 교육하라”고 명했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2.01 03:00 * 유튜브 https://youtu.be/pBHbecmKWNE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06년 4월 15일 대한제국 황제 광무제가 조령(詔令·천자의 명령)을 내렸다. “듣자니 태학(성균관)이 황폐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