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차현진의 돈과 세상] [9] 전쟁 중에도 장수를 바꾼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9] 전쟁 중에도 장수를 바꾼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3.04 03:00 | 수정 2021.03.04 03:00 1913~1916년 제46대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맥아두(1863~1941). 세계대전을 계기로 내치부터 외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재무부 수장이었지만, 준수한 외모와 단순 명료하고 자기 확신 강한 성격과 달리 국가 경제 운용에 있어서는 원칙이 부족했다는 평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의 만남은 뉴스거리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재무장관과 연준 의장이 워낙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 만남이 수평적이지 않았다. 법률상 연준위원회의 의..

[차현진의 돈과 세상] [8] 영란은행의 ‘오래된 저주’

[차현진의 돈과 세상] [8] 영란은행의 ‘오래된 저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2.25 03:12 | 수정 2021.02.25 03:12 대공황 전에는 중앙은행이 민간기업이었다. 공산혁명 이후 설립된 소련중앙은행만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덴마크중앙은행은 1813년 국영기업으로 출발했다가 5년 만에 민영화되었다. 영국의 영란은행도 민간기업이었지만, 여느 기업들과는 달랐다. 정부를 쥐락펴락했다. 국내에서 처칠 재무장관을 압박해서 1925년 금본위제도를 복원시키는가 하면, 국제 무대에서는 1930년 국제결제은행(BIS)을 출범시키는 데 정부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돈의 힘이었다. 노동당은 그런 힘을 가진 영란은행..

[차현진의 돈과 세상] [7] 소득이 불안하면 평정심을 잃는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7] 소득이 불안하면 평정심을 잃는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0시 기준 621명의 신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1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 설치된 중구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자를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1년 전 오늘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31번 환자'다. WHO가 ‘우한폐렴’을 ‘코로나19’로 고쳐 부르며 인류 차원에서 전쟁을 선포하던 무렵이었고, 31번 환자는 집단감염의 첫 사례였다. 그때부터 검역과 거리 두기를 두고 공권력과 시민의 마찰이 시작되었다. 검역과 거리 두기가 남의 일이라면, 문제없다. 1878년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에서 황열병이 유행했다. 높은 치사율에 당황한 연방..

[차현진의 돈과 세상] [6] 그러다 초가삼간 태운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6] 그러다 초가삼간 태운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2.11 03:00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서민 금융 천국이었다.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 고려의 의창(義倉), 조선의 환곡(還穀)처럼 국가가 서민용 저리 융자에 앞장섰다. 가히 애민(愛民) 금융국이라 할 만하다.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대부업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가 1515년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간 이자를 받는 사업’을 처음으로 양성화했다. 그때 ‘약간’의 기준은 연 5%였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이를 연 10%로 높였다. 영국은 채무자에게 가혹했다. 빚을 못 갚으면, 다른 식구들이 대신 갚을 ..

[차현진의 돈과 세상] [5] 실패가 낳은 美 연준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2.04 03:00 20세기 초 악명 높은 사업자이자 투기꾼이었던 찰스 와이먼 모스(가운데·1856~1933)의 1910~1915년 무렵 사진. 뉴욕의 얼음 공급을 독점해 큰돈을 번 뒤 해운사들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유나이티드 구리' 회사 주식 사재기로 1907년 대공황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 중 한 사람이다. /미 의회도서관·베인뉴스서비스 공자는 “귤이 회수를 넘어 북쪽에 가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고 말했다. 그런데 그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대규모 코로나 감염 사태를 겪은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확진받은 미결수 100여 명을 경북 청송으로 옮겼더니 음성으로 나왔다. 바이러스 입장에선, 북쪽의 귤이 남쪽에서 탱자가 된 것일까. 어떤 진단 결과는 역사를 ..

[차현진의 돈과 세상] [4]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차현진의 돈과 세상] [4]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1.28 03:00 일본 우키요에 화가 호쿠사이(葛飾北斎)의 그림 '에도 스루가 초의 미츠이 상점(江戸駿河町三井見世略圖)'. /영국박물관 에도 시대 일본은 폐쇄 사회였다. 유럽의 식민지가 될까 봐 걱정하는 다이묘(大名)들이 주민들에게 ‘우리 식대로 살자’는 최면을 걸고 동태를 감시했다. 서양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지하로 숨었다. 다이묘의 통치 자금은 소수 금융 재벌들한테서 나왔다. 보호와 특혜의 대가였다. 외부와 단절된, 지독한 정경 유착의 구조를 메이지 유신이 깼다. 메이지 정부는 과점 금융 재벌들을 해체하고 서양 은행 제도를 수입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금융업자를 료가에(兩替..

[차현진의 돈과 세상] [3] 한국은행엔 금이 없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3] 한국은행엔 금이 없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1.21 03:00 1998년 초 한국은행은 기업은행이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모은 금 290kg을 12개의 금괴로 만들어 사들였다. /이덕훈 기자 외환 위기의 기억은 모든 사람에게 스산하다. 그래도 한 가지 훈훈한 기억이 있다. ‘금 모으기 운동’이다. 1997년 말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 위기를 실토하는 특별 담화를 발표하자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섰다. 집 안의 금붙이를 외국에 팔아서 그 돈으로 부족한 달러를 메꾸자는 시민운동이 시작되었다. “쌓아두면 먼지가 서 말, 꺼내 팔면 달러가 서 말”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두고 은행들이 국제 시세로 금을 매입했다. 은행 창구 앞에는 장롱 속에 두었던 돌반지를 팔려는 ..

[차현진의 돈과 세상] [2] 세상은 기술보다 복잡하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2] 세상은 기술보다 복잡하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1.14 03:00 블록체인 기술은 2008년 말 세상에 나왔으니 올해 겨우 틴에이저가 됐다. 그런데 벌써부터 전 세계적 팬덤 현상을 몰고 다닌다. 광팬들은 그 기술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생각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 자산 옹호자들은 중앙은행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 ‘세계 시민’들이 스스로 화폐를 만들어 그것으로 국경을 넘어 상거래를 하는, 무정부 상태를 이상향으로 삼는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는 정반대의 세상을 꿈꾼다. 지금 유통되고 있는 지폐와 동전까지 디지털 화폐로 대체하여, 국가가 개인들의 씀씀이를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추구..

[차현진의 돈과 세상] [1] 거지의 은화 한 닢

[차현진의 돈과 세상] [1] 거지의 은화 한 닢 차현진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1.07 03:00 금값이 이상하다. 돈이 많이 풀리면 금값이 뛰어야 하는데, 오히려 약세다. 90년 전 대공황 때와 반대다. 1929년 10월 미국 증시 폭락 이후 세계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1931년 7월 견디다 못한 독일이 금본위제도를 포기했다. 그러자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도 금본위제도를 이탈하고, 이어 일본도 가세했다. 1933년 미국도 손을 들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당시 상하이의 대학생 피천득은 골목을 지나가다가 거지를 보았다. 그 거지는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손바닥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 그의 손에는 은화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