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차현진의 돈과 세상] [19] 축의금은 돈이 아니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19] 축의금은 돈이 아니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일본은 결혼축의금을 그냥 전하지 않는다. 노시(のし)와 미즈히키(水引)라는 섬세한 장식이 달린 특별한 봉투에 넣어 후쿠사(袱紗)라는 비단보자기에 싸서 전한다. 돈을 마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보아야만 이해가 된다. / creema.jp 5월은 결혼의 계절이다. 결혼식 풍습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부산·경남 지역 풍습은 상당히 특이하다. 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하객들에게 혼주가 새 돈 1만~2만원이 든 봉투를 일일이 전한다. 일종의 교통비다. 부산·경남의 풍습은 일본의 한가에시(半返し) 풍습에서 온 것이다. 경조사 때 받은 위로나 축하를 상대방에게 돌려주..

[차현진의 돈과 세상] [18] 관치 금융은 벨기에산

[차현진의 돈과 세상] [18] 관치 금융은 벨기에산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왼쪽부터 벨기에 중앙은행(현재는 박물관), 일본은행, 조선은행(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건물. 주한 대사 아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벨기에는 참 작은 나라다. 1830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때는 농업 국가라서 없는 것이 많았다. 은행도 없었다. 이웃 나라 은행들을 찾아가 국고금 취급을 부탁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보다 못 한 유태인 상인들이 중앙은행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그 제안이 반가우면서도 불안했다. 유태인의 경제권 장악이 겁난 것이다. 그래서 감사관을 통해 경영을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여 1850년 벨기에중앙은행 설립을 허가했다. 총재의 결..

[차현진의 돈과 세상] [17] 씨날코를 아십니까

[차현진의 돈과 세상] [17] 씨날코를 아십니까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4.29 03:00 | 수정 2021.04.29 03:00 4·19 혁명을 촉발한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서 제5대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의 사흘 뒤 18일 오후 서대문 자택 기자회견 모습. /조선일보DB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책상에서 제일 먼저 없앤 것이 빨간색 버튼이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비서에게 코카콜라를 찾을 때 누르던 것이다. 미국 문화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때다.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유엔군 병사를 위해 유엔 한국민사지원단(UNCACK)이 코카콜라를 반입했다. 병사들을 위해 들..

[차현진의 돈과 세상] [16] 중앙은행은 최초의 핀테크

[차현진의 돈과 세상] [16] 중앙은행은 최초의 핀테크 차현진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4.22 03:00 | 수정 2021.04.22 03:00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4.15 한국은행제공 은행들이 해외 점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외국의 동업자를 찾는다. 국내 고객이 해외 송금을 의뢰하면 현지의 동업자가 대신 지급하도록 부탁한다. 그 계약을 코레스(correspondence) 계약이라고 한다. 은행의 해외 점포가 없었던 동양에서는 코레스 계약이 굉장해 보였다. 국제 영업을 가능케 하는 요술 방망이였다. 그래서 1882년 제정된 일본은행조례에는 “일본은행은 타 은행과 코레스 계약을 체결한다(제..

[차현진의 돈과 세상] [15] 사이공 블루스

[차현진의 돈과 세상] [15] 사이공 블루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4.15 03:00 | 수정 2021.04.15 03:00 1966년 4월 11일 한국은행 사이공지점이 문을 열었다. 군인이나 은행원이나 목숨을 걸고 달러 벌이 하던 시절의, 사라진 기억이다. /국가기록원 아카이브 사진 1961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날 때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절박했다. 24억달러가 들어갈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지원과 주한 미군 감축 계획 중단을 부탁해야 했다.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케네디를 향해서 결례에 가까울 정도로 확답을 ‘구걸’했다. 상황은 뒤집혔다. 1964년 7월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으로 뛰어오고, 12월 존슨 대통령이 친서를 보냈으며, 1966년 1월에는 험프리..

[차현진의 돈과 세상] [14] 현재에 충실하라

[차현진의 돈과 세상] [14] 현재에 충실하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4.08 03:00 | 수정 2021.04.08 03:00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와우시민아파트 건물이 붕괴되어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 항공 촬영 사진. /조선일보 DB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아주 오래 전 4·19혁명과 몇 년 전 세월호 사건이 떠오른다. 그 중간쯤에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가 있다. 완공된 지 넉 달도 안 된 아파트가 한밤중에 무너져 잠을 자던 30여 명이 죽었다. 1970년 오늘이었다. 사고 직후 조사해 보니 모든 것이..

[차현진의 돈과 세상] [1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차현진의 돈과 세상] [1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4.01 03:00 | 수정 2021.04.01 03:00 40년 전 영국 정부는 인기가 형편없었다. 고질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퇴치와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대처 총리가 초긴축정책을 편 탓이다. 수백 명의 경제학자들이 대처리즘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무렵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의 인기는 더 형편없었다. 급기야 군부 안에서도 분열이 생겨 부하들이 대통령을 축출했다. 새 대통령은 국면 전환을 위해서 느닷없이 영국을 도발했다. 코앞의 영국 섬을 점거한 뒤 자기 땅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지구 반대편의 쓸모없는 땅을 위해 영국이..

[차현진의 돈과 세상] [12] 개혁이 늦으면 비극을 낳는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12] 개혁이 늦으면 비극을 낳는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3.25 03:00 | 수정 2021.03.25 03:00 영국 노예제 반대운동 모임의 공식 메달(1795). 손목과 발목에 족쇄와 쇠사슬을 찬 흑인 아래쪽에 "나는 인간도 형제도 아닌가요?(Am I not a man and a brother?)"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위키피디아 “노예는 사람인가, 재산인가?” 독립전쟁을 할 때 미국인들은 그 질문을 애써 피했다. 그러나 헌법을 만들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노예가 사람이라면, 하원 구성에서 북부가 불리하다. 재산이라면, 남부 노예 주인들이 세금 폭탄을 맞는다. 논란 끝에 노예는 ..

[차현진의 돈과 세상] [11] 세금 앞에 예외 없나

[차현진의 돈과 세상] [11] 세금 앞에 예외 없나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3.18 03:00 | 수정 2021.03.18 03:00 한시적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미국은행(1816~1836).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 은행은 350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세워져 18개의 지점을 거느린, 미국 최대 기업이었다. 12월 결산법인의 법인세 납부 마감이 다가온다. 많은 기업이 3월 말까지 서류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학교와 종교단체는 예외다. 비영리단체는 원칙적으로 법인세를 안 낸다. 영리와 비영리의 기준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변호사와 세무사들이 돈을 버는 이유다. 중앙은행은 영리기업인가, 아닌가? 미국에서는 이 간단한 질문에..

[차현진의 돈과 세상] [10] 국채 종주국의 자리

[차현진의 돈과 세상] [10] 국채 종주국의 자리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3.11 03:00 | 수정 2021.03.11 03:00 2015년 9월 예일대 연구팀이 공개한 1648년 네덜란드 발행 영구채(perpetual bond). 네덜란드 수계관리당국이 발행한 것으로, 매년 약 11.65유로의 이자가 발생한다. /예일대학교 김치의 원조가 어디냐를 두고 한국과 중국이 다툰다. 중국은 국수의 원조 자리를 두고 이탈리아와도 경쟁한다. 영국·네덜란드·프랑스는 국가 채무의 종주국을 놓고 자존심을 건다. 영국의 설명은 이렇다. 절대왕정 시대에는 국채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왕이 필요한 만큼 세금을 거둬 쓰다가 여의치 않을 때 외국의 대부 업자에게 돈을 빌렸다. 그래서 “왕채=사채=외채”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