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요 脩道之謂教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품이라 이르고, 성품을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르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이르니라.
[家苑 註] 天命은 性이고, 率性은 道이며 脩道는 敎라는 『중용』의 첫대목은 『대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삼강령인 명명덕(明明德)과 친민(親民)과 지어지선(止於至善)과 서로 짝을 이루고 있으며, 유학의 도를 실현하기 위한 기초개념을 정의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공자가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一陰一陽之謂道요 繼之者善也요 成之者性也라(한번 음하고 한번 양함을 도라 이르고, 잇는 것은 선이오, 이루는 것은 성이라)”고 정리하고 이어 제8장에서 “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라(이루어진 성품을 보존하고 보존함이 도의의 문이라)”고 한 내용에 근거한다. 예로부터 『대학』과 『중용』을 庸學이라고 한데 묶어서 부르고, 『주역』의 체용표리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역』이 天道에 의한 人道를 다룬 학문이라면 『대학』과 『중용』을 비롯한 유학경전은 『주역』에 근거한 군자의 실천학문을 담은 글이다. 그러므로 文王이 하늘의 덕을 원형이정(乾은 元亨利貞이라)고 한 것에 대해 공자는 文言傳 제1절에서 “元者는 善之長也요 亨者는 嘉之會也요 利者는 義之和也요 貞者는 事之幹也니 君子體仁이 足以長人이며 嘉會足以合禮며 利物足以和義며 貞固足以幹事니 君子行此四德者라 故로 曰乾元亨利貞이라하니라(원은 선의 어른이고, 형은 아름다움의 모임이고, 이는 의의 화합이고, 정은 일의 줄기이니 군자가 인을 체득함은 족히 이로써 어른이고, 아름답게 모임은 족히 예에 합하며, 물건을 이롭게 함은 족이 의에 화합하며, 정고함은 족히 일을 주관하니 군자는 이 네 가지 덕을 행하니라. 그러므로 건원형이정이라 하니라.)”고 했다.
여기에 맹자는 “측은한 마음은 仁의 실마리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義의 실마리요,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실마리요, 시비하는 마음은 智의 실마리라(惻隱之心은 仁之端也요 羞惡之心은 義之端也요 辭讓之心은 禮之端也요 是非之心은 智之端也니라 - 『맹자』 공손추상편 제6장).”고 하였는데, 앞서 ‘貞固 足以幹事’를 맹자는 군자의 智로 해석하여 비로소 四德이 仁義禮智로 갖추어져 元亨利貞의 짝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더욱이 공자가 “知者樂水(『논어』 옹야편 제21장)”라 하였듯이 北方水의 덕이 知가 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 공자는 體로 삼아야 할 덕목이 忠信임을 강조했다. 『논어』 곳곳에 나오는 主忠信이나 孝弟忠信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程子는 四端에 信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성심이 있어야 사단이 되니 곧 信이 그 가운데 있다(四端에 不言信者는 旣有誠心이라야 爲四端이니 則信在其中矣라).”고 했고, 朱子는 “사단의 信이 오행의 土와 같아서 정한 위도 없으며 이룬 이름도 없으며 전일한 기운도 없되 水火金木이 이(土)를 기다려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土가 四行에 있지 않음이 없고, 四時인즉 왕(土)에 의존하니 그 이치가 또한 이와 같다(四端之信이 猶五行之土하여 無定位하며 無成名하며 無專氣하되 而水火金木이 無不待是以生者라 故로 土於四行에 無不在하고 於四時則寄王焉하니 其理 亦有是也니라).”고 했다(『맹자역해』 공손추상편 제6장 해설 참조). 그런데 아래 설명(注와 疏)에서 鄭玄과 孔穎達은 “水神則信, 土神則知”라 하여 信과 知를 바꿔 설명하고 있는데 오행의 이치는 물론 孔孟으로 이어지는 유학의 도맥과도 맞지 않는다. 후대에 이 설을 바탕으로 오행론을 펴는 이들도 있으나 잘못 되었음을 분명히 한다.
[注] 天命은 謂天所命生人者也니 是謂性命이라 木神則仁이오 金神則義요 火神則禮요 水神則信이오 土神則知라 孝經說은 曰性者는 生之質命이니 人所稟受度也라 率은 循也라 循性行之를 是謂道라 脩는 治也라 治而廣之하여 人放效之를 是曰教라하니라
천명(天命)은 하늘이 명하여 사람을 낸 바이니, 이를 성명이라 이르니라. 목신은 곧 인(仁)이고, 금신은 곧 의(義)이고, 화신은 곧 예(禮)이고, 수신은 곧 신(信)이고, 토신은 곧 지(知)라. 『효경설』(前漢人 王式의 저서)에 이르기를, 성(性)은 삶의 바탕인 명이니, 사람이 부여받은 법도라. 솔(率)은 따름이라. 성품을 따라 행함을 이에 도라 이르니라. 수(脩)는 다스림이라. 다스려 넓혀서 사람들이 두루 본받게 함을 이에 교(教)라고 하니라.
[章句] 命은 猶令也요 性은 卽理也라 天以陰陽五行으로 化生萬物하여 氣以成形하고 而理亦賦焉하니 猶命令也라 於是에 人物之生은 因各得其所賦之理하여 以爲健順五常之德하니 所謂性也라 率은 循也요 道는 猶路也라 人物이 各循其性之自然이면 則其日用事物之間에 莫不各有當行之路하니 是則所謂道也라 脩는 品節之也라 性道는 雖同而氣稟이 或異니라 故로 不能無過不及之差할새 聖人이 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하여 以爲法於天下則爲之敎니 若禮樂刑政之屬이 是也라 蓋人이 知己之有性하되 而不知其出於天하며 知事之有道하되 而不知其由於性하며 知聖人之有敎하되 而不知其因吾之所固有者하여 裁之也라 故로 子思 於此에 首發明之하시니 而蕫子所謂道之大原이 出於天이라하니 亦此意也라
명(命)은 영(令)과 같고, 성(性)은 곧 이치라.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하여 기운으로 형체를 이루고 이치를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음이라. 이에 사람과 물건의 생함은 각각 그 부여받은 바의 이치로 인하여 건순오상의 덕이 있다고 하니, 이른바 성(性)이라. 솔(率)은 따름이고, 도(道)는 길과 같음이라. 사람과 물건이 각각 그 성품의 자연함을 따르면, 그 날로 쓰는 사물의 사이에 각각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도(道)라. 수(脩)는 품질에 따라 마름질함이라. 성(性)과 도(道)는 비록 같으나 기운의 받음이 혹 다르니라. 그러므로 능히 과불급의 차이가 없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사람과 물건의 마땅히 가야할 바로 인하여 잘 품절하여 천하에 본받도록 했다면 가르침이 되니, 예악과 형정의 붙이가 이것이라. 대개 사람이 자기에게 성품이 있음을 알되 그 하늘에서 나옴을 알지 못하며, 사물에 도가 있음을 알되 그 성품에서 말미암음을 알지 못하며, 성인의 가르침이 있음을 알되 그 나의 고유한 바로 인하여 마름질해야 함을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자사가 이에 먼저 밝히셨으니 동자(董子, 董仲舒)가 이른바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 하니, 또한 이 뜻이라.
[細注] 北溪陳氏曰性卽理也라하니 何以不謂之理而謂之性이오 蓋理는 是泛言天地間人物公共之理요 性은 是在我之理니 只這道理受於天而爲我所有라 故로 謂之性이라 ○朱子曰伊川云天所賦爲命이오 物所受爲性이오 理는 一也라하니 自天所賦予萬物을 言之謂之命이라하고 以人物所稟受於天을 言之謂之性이라 ○問五常之德에 何故添却健順二字오 曰五行은 乃五常也요 健順은 乃陰陽二字이니 旣有陰陽이오 須添此二字始得이라 ○健順之軆는 卽性也니 合而言之則曰健順이오 分而言之則曰仁義禮智니 仁禮는 健이오 而義智는 順也라
북계진씨 가로대, “성즉리(性卽理)라고 하니 어찌하여 理라 하지 않고 性이라고 이르는고? 대개 理는 이에 천지간에 인물과 공공의 이치를 널리 말한 것이고, 性은 이에 나에게 있는 이치이니 다만 저 도리는 하늘에서 받아 나를 위해 소유한 바이라. 그러므로 性이라 하니라.” ○주자 가로대, “이천이 이르기를, 하늘이 준 바가 命이 되고, 물건이 받은 바가 性이 되고, 이치는 한 가지라 하니, 하늘로부터 만물에게 부여한 바를 命이라 일러 말하고, 이로써 사람과 물건이 하늘에서 받는 바를 性이라 일러 말함이라.” ○묻기를 “오상의 덕에 무슨 까닭으로 문득 건순(健順)이라는 두 글자를 더했습니까?” 가로대 “오행은 이에 오상이고, 건순은 이에 음양이라는 두 글자이니, 이미 음양이 있고 모름지기 이 두 글자를 더하여 비로소 얻어짐이라.” ○건순의 체는 곧 성이니, 합하여 말하면 건순이고, 나누어 말하면 인의예지니, 인의는 건이고, 의지는 순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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