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5 致中和면 天地 位焉하며 萬物이 育焉이니라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바르며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注] 致는 行之至也라 位는 猶正也라 育은 生也며 長也라
치(致)는 행함의 지극함이라. 위(位)는 바름과 같음이라. 육(育)은 낳음이며, 기름이라.
[疏] 正義曰此節은 明中庸之德은 必脩道而行이라 謂子思欲明中庸은 先本於道라 天命之謂性者는 天은 本無體하고 亦無言語之命이로대 但人感自然而生하여 有賢愚吉凶하니 若天之付命遣使之然이라 故로 云天命이라 老子云道는 本無名이오 強名之曰道라하니 但人自然感生하여 有剛柔好惡或仁或義或禮或知或信하니 是天性自然이라 故로 云謂之性이라 率性之謂道는 率은 循也요 道者는 通物之名이니 言依循性之所感而行하여도 不令違越하니 是之曰道라 感仁行仁하고 感義行義之屬하니 不失其常하고 合於道理하여 使得通達하니 是率性之謂道라 脩道之謂教는 謂人君在上하여 脩行此道以教於下하니 是脩道之謂教也라
정의에 가로대, “이 절(01 天命 ~ 育焉)은 중용의 덕은 반드시 도를 닦아서 행해야 함을 밝힘이라.” 이르기를, 자사는 중용은 먼저 도에 근본 해야 함을 밝히고자 함이라. ‘天命之謂性’은 천(天)은 본래 체가 없고 또한 언어의 명함이 없는데 다만 사람이 자연히 느껴서 나와 어질고 어리석고 길하고 흉함이 있으니 마치 하늘이 명을 주고 보내서 부리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천명이라고 이름이라. 노자가 이르기를, 도는 본래 이름이 없고 억지로 이름하여 도라 한다고 하니, 다만 사람이 자연히 느껴 생하여 강하고 부드럽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있으며, 혹 인과 혹 의와 혹 예와 혹 지와 혹 신이 있으니 이것이 천성의 자연함이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謂之性’이라고 하니라. ‘率性之謂道’는 솔(率)은 따름이고, 도(道)는 물건에 통하는 이름이니, 말하기를, 성품의 느끼는 바에 의지하고 따라 행하여도 하여금 어기거나 넘지 아니하니 이를 도(道)라고 하니라. 인을 느껴서 인을 행하고 의를 느껴서 의를 행하는 붙이이니 그 떳떳함을 잃지 않고 도리에 합하여 하여금 통달함을 얻으니, 이것이 ‘率性之謂道’라. ‘脩道之謂教’는 인군이 위에 있으면서 이런 도를 닦아 행하여 아래를 가르치니 이것이 ‘脩道之謂教’라.
[注疏] 正義曰云天命謂天所命生人者也是謂性命者는 案易乾彖云乾道變化에 各正性命이라하니 是也라 云木神則仁者는 皇氏云東方은 春이니 春主施生하고 仁亦主施生이라하고 云金神則義者는 秋爲金이니 金主嚴殺하고 義亦果敢斷決也이라하고 云火神則禮者는 夏爲火니 火主照物而有分別하고 禮亦主分別이라하고 云水神則信은 冬主閉藏하여 充實不虛하고 水有內明하여 不欺於物하고 信亦不虛詐也라하고 云土神則知者는 金木水火를 土無所不載하니 土所含義者는 多知亦所含者衆이라 故로 云土神則知라하니라 云孝經說曰性者는 生之質命이오 人所稟受度也에 不云命者는 鄭以通解性命爲一이라 故로 不復言命이라 但性情之義는 說者不通하니 亦略言之라
정의에 이르기를 ‘天命謂天所命生人者也是謂性命’이라고 한 것은, 살펴보건대 『주역』 乾卦 단전에 이르기를, “건도 변화에 가각 성명을 바룬다.”라고 하니, 이것이라. ‘木神則仁’이라고 이른 것은 황씨가 “동방은 봄이니 봄은 베풀어 생함을 주장하고, 인 또한 베풀어 생함을 주장함이라.”하고, ‘金神則義’라고 이른 것은 “가을은 금이 되니, 금은 엄하게 죽임을 주장하고, 의 또한 과감하게 결단함이라.”하고, ‘火神則禮’라고 한 것은 “여름은 불이 되니, 불은 물건을 밝힘을 주장하여 분별함을 두고, 예 또한 분별을 주장함이라.”하고, ‘水神則信’이라고 한 것은 “겨울은 닫고 감춤을 주장하여 충실하면서 비지 않고, 물은 안으로 밝음을 두어 물건을 속이지 않고, 신 또한 헛되게 속이지 않음이라.”하고, ‘土神則知’라고 한 것은 금목수화를 토는 싣지 않은 바가 없으니, 토가 함의한 바는 많이 알고, 또한 함축한 바가 많으므로, ‘土神則知’라 하니라. 『효경설』에 ‘性者生之質命人所稟受度也’라고 이름에 命을 이르지 않은 것은 정씨가 성명을 통틀어 해석함과 한 가지가 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다시 명을 말하지 않음이라. 다만 성정의 뜻은 설명한 것이 통하지 않으니 또한 간략히 말함이라.
賀瑒이 云性之與情은 猶波之與水니 靜時是水요 動則是波니 靜時是性이오 動則是情이라 案左傳云天有六氣 降而生五行이라하니 至於含生之類하여 皆感五行生矣니라 唯人獨稟秀氣라 故로 禮運에 云人者는 五行之秀氣라하니 被色而生에 旣有五常仁義禮智信하고 因五常而有六情하니 則性之與情은 似金與鐶印이니 鐶印之用非金이나 亦因金而有鐶印이라 情之所用非性이나 亦因性而有情이니 則性者는 靜이오 情者는 動이라 故로 樂記에 云人生而靜은 天之性也요 感於物而動은 性之欲也라 故로 詩序에 云情動於中이 是也라 但感五行하여 在人爲五常이니 得其清氣備者則爲聖人이오 得其濁氣簡者則爲愚人이라 降聖以下와 愚人以上은 所稟或多或少하니 不可言一이라 故로 分爲九等이라 孔子云唯上智與下愚不移라하니 二者之外는 逐物移矣니라 故로 論語에 云性相近이나 習相遠也라하니 亦據中人七等也라
가창(452—510. 字 德璉, 南朝시대 齊와 梁에서 太學博士와 太常丞을 지냄)이 이르기를 “성품인 것과 정은 파도치는 것과 물과 같으니 고요할 때는 물이고, 움직이면 파도이니, 고요하면 성품이고, 움직이면 정이라.”고 하니라. 『춘추좌전』(昭公元年)을 살펴보건대 “하늘에는 여섯 기운이 있으니 내려와 오행을 생한다(天有六氣, 降生五味, 發爲五色, 徵爲五聲, 淫生六疾, 六氣曰陰陽風雨晦明也, 分爲四時, 序爲五節, 過則爲菑, 陰淫寒疾, 陽淫熱疾, 風淫末疾, 雨淫腹疾, 晦淫惑疾, 明淫心疾, 女陽物而晦時, 淫則生內熱惑蠱之疾).”하니, 생을 머금은 무리에 이르러 다 오행을 느껴 생하느니라. 오직 사람만이 홀로 뛰어난 기운을 받았으므로, (『예기』) 예운에 이르기를, “사람은 오행의 피어난 기운이라.”하니, 빛을 입어 생함에 이미 오상인 인의예지신이 있고, 오상으로 인하여 육정(喜怒哀樂愛惡)이 있으니, 곧 성과 정은 쇠와 환인과 같으니 환인의 쓰임은 쇠는 아니나 또한 쇠로 인하여 환인이 있음이라. 정의 쓰이는 바는 성은 아니나 또한 성으로 인하여 정이 있으니 곧 성은 고요함이고, 정은 움직임이라. 그러므로 (『예기』) 악기에 “사람이 나서 고요함은 하늘의 성품이고, 물건을 느껴서 움직임은 성품의 하고자 함이라.”고 하니라. 그러므로 『시서』에 “정은 마음에서 움직인다.”고 함이 이것이라. 다만 오행을 느껴 사람에게 있으면 오상이 되니, 그 맑은 기운을 얻어 갖추는 자는 성인이 되고, 그 탁한 기운을 얻어 소홀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니라. 성인 이하와 우인 이상은 부여받은 바가 혹 많기도 하고 혹 적기도 하니 가히 하나로 말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나누어 아홉 등급이 되니라. 공자는 “오직 상지와 하우는 옮기지 못한다.”(『논어』 양화편 제3장)고 하니, 두 가지 외에는 물건을 따라 옮겨지니라. 그러므로 『논어』(양화편 제2장)에 “성품은 서로 가까우나 익힘에 서로 멀어진다.”고 하니, 또한 중간 사람인 일곱 등급에 의거함이라.
[疏] 道也者不可須臾離也者는 此謂聖人脩行仁義禮知信하여 以爲教化라 道는 猶道路也니 道者는 開通性命하니 猶如道路開通於人이면 人行於道路에 不可須臾離也니라 若離道則礙難不通하니 猶善道須臾離棄則身有患害而生也니라 可離非道也者는 若荒梗塞澀之處是可離棄하니 以非道路之所由라 猶如凶惡邪僻之行是可離棄는 以亦非善道之行이라 故로 云可離非道也라
‘道也者不可須臾離也’는 이는 성인이 인의예지신을 닦아 행하여 교화함을 이름이라. 도는 도로와 같으니, 도라는 것은 성명을 열어 통하게 하니, 마치 도로가 사람에게 개통되면 사람은 도로를 다님에 가히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음과 같으니라. 만약에 길과 떨어진다면 막혀서 통하니 못하니, 좋은 길을 잠깐이라도 떠나서 버린다면 몸에 근심과 해로움이 생겨남과 같으니라. ‘可離非道也’는 거칠고 막힌 곳은 가히 떠나 버리는 것과 같으니 도로가 말미암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라. 마치 흉악하고 사벽한 행실을 가히 떼어 버리는 것과 같음은 또한 선한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可離非道也’라 하니라.
是故君子戒慎乎其所不睹者는 言君子行道에 先慮其微라 若微能先慮하면 則必合於道니라 故로 君子恒常戒於其所不睹之處라 人雖目不睹之處라도 猶戒愼이온 況其惡事睹見而肯犯乎아 故로 君子恒常戒愼之라 恐懼乎其所不聞者는 言君子恒恐迫畏懼於所不聞之處하니 言雖耳所不聞라도 恒懷恐懼之하니라 不睹不聞이라도 猶須恐懼이온 況睹聞之處에야 恐懼를 可知也라
‘是故君子戒慎乎其所不睹’는 군자가 도를 행함에 먼저 그 은미함을 생각해야 함을 말함이라. 은미한 것을 능히 먼저 생각한다면 반드시 도에 합하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그 보지 못하는 바에 대해 경계해야 하니라. 사람이 비록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곳이라도 오히려 경계하고 삼갈진대 하물며 그 악한 일을 보고 범하기를 즐겨 하랴?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경계하고 삼감이라. ‘恐懼乎其所不聞’은 군자는 항상 듣지 못하는 바에 두렵고 두려워해야 하니, 말은 비록 귀로 듣지 못하는 바라도 항상 두렵고 두렵게 여겨야 함을 말함이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모름지기 두려워할진대 하물며 보고 듣는 곳임에야! 두렵고 두려워해야 함을 가히 알 수 있음이라.
莫見乎隱莫顯乎微者는 莫은 無也니 言凡在衆人之中에 猶知所畏하고 及至幽隱之處라 謂人不見이면 便卽恣情하고 人皆佔聽이면 察見罪狀이 甚於衆人之中하니 所以恒須愼懼如此라야 以罪過愆失無見於幽隱之處하고 無顯露於細微之所也라 故君子愼其獨也者는 以其隱微之處라도 恐其罪惡彰顯라 故로 君子之人은 恒愼其獨居니라 言雖曰獨居라도 能謹愼守道也라
‘莫見乎隱莫顯乎微’는 막(莫)은 없음이니, 무릇 뭇사람들 가운데에 있을 때 두려운 바를 아는 것처럼 지극히 은미한 곳까지 미치도록 해야 함을 말함이라. 이르기를, 사람이 보지 않으면 문득 정을 멋대로 함에 나아가고, 사람들이 다 보고 들으면 죄상을 살펴봄이 뭇사람 가운데보다 심하니, 이로써 항상 모름지기 삼가고 두려워함이 이와 같아야 죄와 허물과 실수가 은미한 곳에 나타남이 없고, 세미한 곳에서도 드러남이 없느니라. ‘故君子愼其獨也’는 이로써 그 은미한 곳에 있더라도 그 죄악이 드러남을 두려워하니라. 그러므로 군자인 사람은 항상 그 홀로 거처하더라도 삼가니라. 모름지기 홀로 거처한다 하더라도 능히 삼가고 도를 지킴을 말함이라.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者는 言喜怒哀樂은 緣事而生하니 未發之時엔 澹然虛靜하여 心無所慮而當於理라 故로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謂之和者는 不能寂靜而有喜怒哀樂之情하니 雖復動發에 皆中節限은 猶如鹽梅相得하여 性行和諧라 故로 云謂之和라 中也者天下之大本也者는 言情慾未發은 是人性初本이라 故로 曰天下之大本也라 和也者天下之達道也者는 言情慾雖發而能和合하여 道理可通達流行이라 故로 曰天下之達道也라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은 희노애락은 일과 연관되어 나오니 아직 발하지 아니했을 때에는 맑은 듯 공허하고 조용하여 마음이 생각할 바가 없어 이치와 어울리므로 중이라 이르고, ‘發而皆中節謂之和’는 능히 고요하지 못하여 희노애락의 정이 있으니 비록 다시 움직여 발함에 다 알맞게 제한함은 마치 소금과 매실이 서로를 얻은 것처럼 성품과 행함이 조화를 이루므로 화(和)라고 이른다고 함이라. ‘中也者天下之大本也’는 정욕이 아직 발하지 않음은 인성의 근본이므로 ‘天下之大本也’라고 함이라. ‘和也者天下之達道也’는 정욕이 비록 발했으나 능히 화합하여 도리가 가히 통달하고 유행하므로 ‘天下之達道也’라고 함이라.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은 致는 至也요 位는 正也요 育은 生長也니 言人君이 所能至極中和하여 使陰陽不錯이면 則天地得其正位焉하며 生成得理라 故로 萬物이 其養育焉이니라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은 치(致)는 지극함이고, 위(位)는 바름이고, 육(育)은 생장이니, 인군이 능히 중화에 지극하여 음양을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천지가 그 바른 자리를 얻으며, 생성이 이치를 얻으므로 만물이 그 길러지니라.
[章句] 致는 推而極之也라 位者는 安其所也요 育者는 遂其生也라 自戒懼而約之하여 以至於至靜之中하여 無所偏倚而其守를 不失則極其中而天地 位矣요 自謹獨而精之하여 以至於應物之處에 無小差謬而無適不然이면 則極其和而萬物이 育矣니라 蓋天地萬物은 本吾一體니 吾之心正이면 則天地之心 亦正矣요 吾之氣順이면 則天地之氣도 亦順矣니라 故로 其效驗이 至於如此하니 此는 學問之極功이오 聖人之能事니 初非有待於外而修道之敎 亦在其中矣라 是其一體一用이 雖有動靜之殊나 然이나 必其軆立而後에 用有以行이면 則其實亦非有兩事也라 故로 於此에 合而言之하여 以結上文之意니라
치(致)는 미루어 다함이라, 위(位)는 그 곳을 편안히 함이고, 육(育)은 그 생함을 이룸이라. 계신공구로부터 간략히 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이르기까지 치우치고 기대는 바가 없어 그 지킴을 잃지 아니하면 그 중을 다하여 천지가 편안하고, 근독으로부터 정미하게 하여 물건에 응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서 어디를 가든지 그렇지 않음이 없으면 그 화함을 다하여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대개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한 몸이니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나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 또한 순하니라.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음에 이르니, 이는 학문의 지극한 공이고 성인의 능한 일이니, 처음부터 밖에서 기다림이 있지 않았고 수도의 가르침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이 그 일체일용이 비록 동정의 다름이 있으나 그러나 반드시 그 체가 선 뒤에 용이 이로써 행함이 있으면 그 실제로 또한 두 가지 일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이에 합하여 말하여 윗글의 뜻을 맺음이라
右는 第一章이라 子思 述所傳之意以立言에 首明道之本原이 出於天而不可易하니 其實體備於己而不可離요 此言存養省察之要하여 終言聖神功化之極하니 蓋欲學者로 於此에 反求諸身而自得之하여 以去夫外誘之私而充其本然之善이니라 楊氏所謂一篇之體要 是也라 其下十章은 蓋子思 引夫子之言하여 以終此章之意라
위는 제1장이라. 자사가 전한 바의 뜻을 서술하여 말을 세움에 먼저 도의 본원이 하늘에서 나와 가히 바꾸지 못하니, 그 실체는 몸에 갖추어져 가히 떠나지 못함을 밝히고, 이에 보존하여 기르고 성찰함의 요체를 말하여 마침내 성신의 공과 화함의 지극함을 말했으니, 대개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에 저 몸을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얻어서 무릇 바깥에서 꾀는 사사로움을 버리고 본연의 선함을 채우도록 함이라. 양씨가 이른바 한편의 체요(體要)라고 한 것이 이것이라. 이하 열 장은 대개 자사가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장의 뜻을 마무리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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