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윤미향씨 탓에 부쩍 기부란 말이 화제에 오른다. 기부를 떠올리면 2년 전 작고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생각난다. 그와 함께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구 회장은 신문 등을 통해 좋은 일을 했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알게 되면 사재(私財)로 도와줬다고 한다. 비서들이 '배달부' 역할을 맡아 "모시는 어른이 드리라고 했다. 문제가 없는 돈이니 받으셔도 된다"면서 전했다. 놀라웠던 것은 돈을 건네받은 사람 중 적잖은 이들이 "내가 돈 받겠다고 한 일이 아니다. 더 좋은 데 쓰시라"면서 거절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따뜻하고 아름다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구 회장의 숨은 기부 활동이 자칫 세금 처리 등에서 문제가 될 수 있어 제도화한 것이 바로 LG 의인상이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121명에게 줬다. 이런 사정이 조금씩 알려져 "난 가전은 LG 제품만 쓴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기부는 자본주의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기부가 대표적이다.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 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며 1조원이 넘는 재산을 장학 재단에 내놓은 이종환 관정교육재단 이사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통 큰 기부만 있는 게 아니다. 명동성당을 가보시라.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엔 자녀의 생일마다 파티할 돈을 쪼개 기부하는 이들이 수만 명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수많은 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부자여서가 아니다. 청소부로, 분식점 주인으로, 파출부로 일생을 바쳐 모은 돈을 자신을 지켜준 사회에 내놓는 뭉클한 사연들도 부지기수다. 기부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기부도 종종 있다. 최근엔 조국씨와 김의겸씨가 그랬다. 조국씨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 "('가족 펀드' 의혹이 제기된) 사모 펀드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아마 반대 진영이나 재벌 등이 의혹받는 과정에서 기부를 선언했다면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 이제 초등학생도 다 짐작한다.
김의겸씨는 그 유명한 '흑석동 집'을 팔면서 '차액 기부'를 선언했다. 예상대로 기부 선언 후 총선 출마 선언으로 이어진 그의 행동에 대한 비판은 논외로 두자. 살면서 그토록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찬 기부 선언은 처음 봤다.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상위 30%에게는 그 돈을 기부하라는 '강요'가 시작됐다.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도 놀랍지만, 기부란 행위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어도 되는지 모를 일이다. 혈세를 이용한 이 돈의 기본 성격은 소비 활성화를 통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이다. 이런 일에 상위 30%는 빠지라는 소리인가? 기부마저도 교묘하게 부자와 일반인이란 편 가르기 프레임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부금 횡령 의혹 사건이기도 한 '윤미향 사태'는 우리 사회 특정 세력들의 비뚤어진 '기부관'에서 기인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일부 진보 진영은 쉼터 고가 매입 의혹 등의 행위를 놓고, 기부 모금이나 사용을 정밀하게 쓰지 못한 게 무슨 큰 잘못이냐는 식으로 덮고 가는 태도를 보인다. 기부를 아주 우습게 알거나 가볍게 여기 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기부는 잘못하다 들킨 뒤 찾는 피난처도, 돈 많은 사람들의 팔을 비틀어 받아내는 돈도 아니다. 기부는 삭막해지는 세상에 단비 같은 행복 바이러스다. 그렇기에 기부를 하는 것도, 기부받은 돈을 쓰는 것도 무엇보다 존중받고 소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기부'라고 쓰고 '공돈'이라고 읽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