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근(貴近)이란 조선 시대 임금의 측근 중에서도 특히 총애받는 신하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조는 재위 초기에 홍국영(洪國榮)이라는 귀근을 가까이하다가 큰 곤욕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재위 후반기에 귀근 또 한 명을 총애했다. 정동준(鄭東浚)이라는 인물이다. 규장각 출신의 정동준은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쳐 정조 14년에는 승지로서 정조를 보필했다. 그가 주로 국정을 농단한 시기는 정조 17, 18년으로 보이는데 정작 ‘정조실록' 17, 18년에는 그의 이름도 아예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정조 19년 1월 11일 첨지 권유(權裕)가 가슴 서늘한 상소문을 올렸다. 그중 일부다. ”전하께서 재위하신 지 15, 16년이 지나면서 세도(世道)가 갈수록 타락하고 백성들의 뜻이 미혹돼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는데 한마디로 결론 내리자면 이는 귀근(貴近)의 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매번 마음먹은 대로 정치가 안 된다고 조정에서 탄식하곤 하십니다만 저 귀근들의 죄를 바로잡지 않는 한 오늘날의 조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이 자들의 모함을 변별해주지 않는 한 오늘날의 습속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이 자들을 그냥 둔다면 전하께서 비록 한(漢)나라나 당(唐)나라의 중간쯤 되는 임금[中主]이 되어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정상달(下情上達), 아래의 실상이 위로 잘 전달된다면 익명서(匿名書)가 발붙일 곳이 없다. 설사 익명서가 떠돈다 한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시무 7조’ 운운하는 익명서가 큰 환호를 받는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정치하는 사람,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나마 정조는 이 글에 발끈하지 않고 “그대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그대가 소원한 처지에서 귀근(貴近)이라는 두 글자를 제대로 언급했는데 정말 타당하게 여기는 바이다”라고 비답(批答)했다. 정조의 뜻을 알아차린 정동준은 곧바로 자살했다. 시무 7조에 청와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매우 궁금하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 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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