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고위직에 있는 관리가 물러나려 할 때 즐겨 인용하는 말이 있었다. 제량지초(鵜梁之誚) 혹은 제량지기(鵜梁之譏)가 그것이다. 사다새가 보 둑에 있는 것을 기롱하거나 비판한다는 말이다. 제량(鵜梁)은 ‘시경(詩經)’에 실린 시 ‘후인(候人)’에 나오는 구절을 줄인 말이다. “사다새가 보 둑에 있으면서[維鵜在梁]/ 그 날개를 적시지도 않네/저기 저 사람 그 옷에 어울리지 않도다.” 즉 스스로 생각건대 관직에 어울리는 자질이나 ‘다움’[德]이 모자라서 자칫 제량(鵜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 물러나겠다고 할 때 빈번하게 썼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신상 사유’처럼 사직서의 상투적 표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사헌부나 사간원에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지 못하는 임금의 인사 방침을 비판할 때는 날카로운 무기로 바뀐다. 제량(鵜梁)은 달리 재량(在梁)이라고도 했는데 역시 같은 뜻이다. 성종 25년 4월 24일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동으로 성종의 장인 윤호(尹壕)가 헛되이 높은 관직에 있다며 “지위가 덕망에 걸맞지 않으면 재량(在梁)의 풍자가 일어나 나라와 그 집안 양쪽에 이로울 바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어느 정권인들 보 둑의 사다새들이 없었던 적이 없지만 이번 정권에는 유난히 많다. 일반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대깨문’인지 ‘문빠’인지 눈치만 잘 살피면 자리 하나 차지하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제량지초(鵜梁之誚)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총리까지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친(親)문재인 팬덤, 즉 대깨문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당에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매우 상식적인 분들일 수 있다”고 상식과 동떨어진 답을 했다. 당연히 옛 재상들처럼 제량지초(鵜梁之誚)를 스스로 인용하며 물러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비판 또한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사다새가 보 둑에 있으면서/ 그 날개를 적시지도 않네/ 저기 저 사람 그 옷에 어울리지 않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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