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69] 川流不息하고 [70] 淵澄取映이라

bindol 2020. 11. 12. 09:02

[69] 川流不息하고 [70] 淵澄取映이라

 

[69] 川流不息하고 : 냇물은 흘러 쉬지 않고

[70] 淵澄取映이라 : 못 물이 맑으면 비침을 취할 수 있다.

(내 천) (흐를 류) (아닐 불) (쉴 식)

(못 연) (맑을 징) (취할 취) (비칠 영)

 

[69] 川流不息하고 : 냇물은 흘러 쉬지 않고

水之逝者爲川이니 其流日夜不息하니 以喩君子乾惕不已也

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라 하는데, 그 흐름이 밤낮으로 쉬지 않으니, 군자가 힘쓰고 두려워하여 그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70] 淵澄取映이라 : 못 물이 맑으면 비침을 취할 수 있다.

水之停者爲淵이니 其澄足以取映하니 以喩君子獨觀昭曠也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못이라 하는데, 그 맑음이 물건을 비출 수 있으니, 군자가 홀로 밝게 봄을 비유한 것이다.

 

[해설]

앞의 두 구절이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나타낸 것이라면 이 두 구절은 쉬지 않고 노력하는 군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川流不息은 주역 乾卦(건괘)大象傳(대상전)에 나오는 自彊不息(자강불식), 곧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여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 굳건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군자가 되라는 뜻이다. '스스로 자()' 밑에 '마음 심()'을 하여 자신이 사사로운 마음을 가지다 보면 '쉬어야 겠다'고 하는 것을 뜻하니 不息이란 사사로운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못물이 맑으면 사물을 비출 수 있듯이(淵澄取映) 군자 또한 스스로 갈고 닦아 세상의 표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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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流不息 淵澄取映

 

 

本文

川流不息 淵澄取映 천류불식 연징취영

냇물은 잠시라도 쉬지 않고 흘러가고

연못은 맑디 맑아 물속까지 다 비친다.

 

훈음(訓音)

내 천 흐를 류 아니 불 쉴 식

못 연 맑을 징 가질 취 비칠 영

 

해설(解說)

이번 장에서는 물이 주야로 쉬지 않고 흘러감을 통해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 자강불식(自彊不息) 스스로 힘쓰며 노력할 것과 그렇게 함으로써 못의 맑음과 고요함으로 해서 속이 다 비치듯 성현의 덕을 함양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川流不息(천류불식) 냇물은 잠시라도 쉬지 않고 흘러가고

()은 물이 흐르는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널리 ''의 뜻으로 쓰입니다. 내는 흔히 하천(河川)이라 불리지요. ()는 강()과 같은 개념이고 천()은 그보다 작은 개념이지요.

()는 수행야(水行也)라 했으니 물이 낮은 데로 간다는 뜻입니다. 흘러간다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옮아 퍼진다'는 유행(流行)의 의미도 있고, 물은 낮은 데로 정처없이 흐르니 '정처없이 떠돈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이를 유랑(流浪)이라 하지요. 물은 여러 갈래로 흐르니 '갈래'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를 유파(流派)라 하지요. 또 멀리 산간오지(山間奧地)나 도서벽촌(島嶼僻村)으로 흘려보내는 형벌의 하나인 '유형(流刑)'이 있는데 이를 유배(流配)라 합니다. 이와 같이 유()는 여러 가지로 쓰입니다.

()은 상형자로 일()은 하늘을 나타내고 그 밑은 새가 나는 모양입니다.

새가 하늘 높이 날아 올라 내려오지 않는데서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냅니다.

()''라고도 읽는데, '' 다음에 ''''을 첫소리로 하는 한자가 나오면 ''로 발음합니다.

()'아니다'는 부정의 의미와 '~하지 마라'는 금지의 뜻과 '~아니한가' 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로도 쓰입니다. 여기서는 부정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은 자()와 심()의 회의자로, 본뜻은 '천천히 숨쉬다'의 뜻입니다. 또 식()은 천야(喘也)라 했으니 '숨이 차서 헐떡거린다.'는 의미입니다. , '숨을 쉰다.'는 의미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휴식의 의미도 있고 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숨을 쉬는 것이 멈추면 모든 것이 그치는 것이니 '그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자식의 의미로도 쓰이는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제 천류불식(川流不息)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냇물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저 냇물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을 본받아 자강불식(自彊不息)하라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논어(論語)》「자한편(子罕篇)에서 연유했는데 내용은 이러합니다.

子在川上曰(자재천상왈) 逝者如斯夫(서자여사부)인저 不舍晝夜(불사주야)로다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은 모두 이와 같아서,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구나."

이것을 천상지탄(川上之嘆)이라고 하는데, <공자(孔子)>가 물가에 서서 물을 바라보며,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는 만물의 변화를 탄식한 고사를 말합니다. 이 구절은 학자마다 새김이 다르다고 하는데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 공자의 탄식을 '세월은 쉬지 않고 흐르니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와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며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가지 뜻이 다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저 무상하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 자강불식(自彊不息)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배우는 사람은 늘 자신을 성찰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것과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육바라밀 중에서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게으름을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심신을 가다듬고 힘써 꾸준히 실천하여 해태한 마음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증장시키고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노력해야만 인격과 덕성을 갖춘 군자(君子)가 되고 해탈도인(解脫道人)이 되는 것입니다.

淵澄取映(연징취영) 연못은 맑디 맑아 물속까지 다 비친다.

()'네모()안에 물이 있다'는 뜻으로 '연못'을 말합니다. 못에는 깊이 차있으므로 '깊다'는 뜻도 있고, 물이 깊으면 고요하므로 '고요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은 수()와 등()의 형성자로 '물의 맑음'을 뜻합니다.

()는 이()()의 회의자로, 싸움에 이겨서 손[]으로 적의 귀[]를 잘라 가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귀를 자르다'가 원뜻이고, 이에서 '취하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은 일()과 앙()의 형성자로, '해가 비쳐 밝다'는 뜻이 '그림자'로 바뀌었습니다. 통속문(通俗文)에 영()은 일음왈영(日陰曰映)이라 했으니 '비치는 달그림자'라는 뜻입니다.

연징취영(淵澄取映)은 못의 물이 맑으면 속까지 비쳐 보인다는 뜻입니다.

연못의 깨끗한 물은 맑음을 본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이 맑으면 밑에까지 훤히 보입니다. 물이 흐리면 밑을 알 수 없습니다. 천류불식(川流不息)하며 정진하는 것은 그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마음이 맑고 고요하면 덕성이 갖추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성현의 성품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삼학(三學)을 닦으라고 합니다. 삼학이란 바로 계()() ()를 말합니다.

()는 자유를 구속하고자 제정된 것이 아니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 바른 생활의 실천 덕목입니다. 계는 악의 탁류(濁流)에 휩쓸려 떠밀려가는 중생에게는 구원의 밧줄이며, 고해(苦海)를 건너는 나룻배이고, 정토에 태어나는 씨앗이 되고,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며, 깨달음의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이 계행을 갖추고 마음을 닦는 정행(定行)을 다해야만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를 수 없습니다. 파도 치는 물은 밑을 볼 수 없고 흙탕물로는 바닥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쉬고 가라앉아야 그 속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여기에서 지혜가 발현됩니다. 지혜가 나지 않고는 깨달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연징취영(淵澄取映)의 깊은 도리입니다. 불자들이 천류불식(川流不息)하며 노력하는 것은 결국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함입니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물과 같이 깨끗해야 합니다. 연징(淵澄)이 되지 않고서는 취영(取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물이야기가 나왔으니 물의 덕성을 알아보겠습니다. 성현들은 물을 보고 그 물의 덕성을 본받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물의 덕을 칭송했습니다.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 했습니다.

"물은 만물에게 좋게 베풀고 이롭게 해주지만, 자신의 공을 다투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미천한 곳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물의 특성은 도에 가깝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물의 특성을 닮은 성인은

"머물기는 비천한 곳을 좋아하고[居善地],

마음은 깊은 못을 좋아하고[心善淵],

* ()은 심오하고 고요함을 뜻함

베풀기는 어질기를 좋아하고[與善仁],

말은 신용을 좋아하며[言善信],

정치는 바로잡기를 좋아하고[政善治],

일하는 것은 능력을 좋아하며[事善能],

움직임은 제 때를 좋아한다[動善時].

그러나 어떤 경우든 모름지기 다투지 않는다[夫唯不爭].

그러므로 잘못이란 것은 없다[故無尤]."

하였습니다. 물과 성인의 특성은 이와 같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관자(管子)>는 말했습니다.

"무릇 물은 유약하면서도 맑아서 사람의 더러움을 씻어 주는 것을 좋아하니 어진 것[]이고, 보기에는 검지만 실제로는 희니 순수한 것[]이며, 양을 헤아릴 때 도구가 필요없지만 가득 차면 그치니 올바른 것[]이고, 어느 곳이든지 흘러가지 않는 곳이 없지만 수평을 이루면 그치니 의로운 것[]이고, 사람들은 모두 높은 곳으로 달려가는데 자기만 홀로 아래로 내려가니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낮춤이야말로 도가 깃드는 곳이요, 왕자의 그릇이다. 물은 그것을 자신의 거처로 삼는다."

이와 같이 물의 덕성을 음미하면서 물의 그 맑음을 본받아 천류불식(川流不息)하듯 노력 정진하여 나의 본성을 볼 수 있도록 연징취영(淵澄取映)의 덕성과 지혜를 발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