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邑華夏 東西二京
【本文】
都邑華夏 東西二京 도읍화하 동서이경
천자가 거처하는 화하의 도읍에는
동과 서에 둘 있으니 낙양과 장안일세.
【훈음(訓音)】
都 도읍 도 邑 고을 읍 華 빛날 화 夏 여름 화
東 동녘 동 西 서녘 서 二 두 이 京 서울 경
【해설(解說)】
이번 제8장은 평천하(平天下)의 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의 도리를 공부해 왔는데 이제 그 대단원인 평천하(平天下)의 도리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도읍화하(都邑華夏)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화하(華夏)의 도읍에는
도(都)는 읍(邑⻏) + 자(者)의 형성자(形聲字)로, 자(者)는 받침대 위에 섶을 모아 쌓은 것을 본떠 '모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고을', '도시', '서울'의 뜻을 나타냅니다. 고을이나 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에 '모이다', '모으다'의 뜻도 있고, 그들을 거느린다는 '거느리다'의 있도 있습니다. 이밖에 '모두', '모조리'의 뜻도 있습니다.
읍(邑)은 구(口) + 파(巴)의 회의자(會意字)로, '구(口)'는 경계가 뚜렷한 영토(領土)를 뜻하고, '파(巴)'는 '절(卪)'로, 제후(諸侯)에게 내린 천자(天子)의 부절(符節)을 말합니다. 고대의 제후는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의 오등작(五等爵)의 위계가 있어서, 공(公)은 사방 500리, 후(侯)는 사방 400리, 백(伯)은 사방 300리, 자(子)는 사방 200리, 남(男)은 사방 100리의 봉토(封土)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위계와 봉토의 대소는 모두 정명(正命)에서 나와 절제가 있다는 데서, '구(口)'와 '파(巴)'를 합하여 제후가 있는 곳, 곧 서울, 국도(國都)를 뜻했습니다. 이 뜻이 변하여, 사람이 모여서 사는 '마을', '고을'의 뜻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읍(邑)은 한자의 구성에서 방(旁)으로 쓰일 때는 자형(字形)을 '⻏'으로 쓰고 '우부방'이라 이릅니다.
화(華)는 형성자(形聲字)로 초목의 꽃을 뜻합니다. 화(華)는 초목의 꽃의 총칭으로 화(花)의 고자(古字)입니다. 꽃은 아름답고 곱기 때문에 '빛나다', '곱다', '좋다', '희다'의 뜻과 '빛', '광택'의 뜻도 있으며 중국이 자국을 일러 화(華)라고 칭합니다. 그래서 화하(華夏)라든가 중화(中華)는 중국을 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교(華僑)는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말합니다.
하(夏)는 혈(頁) + 구(臼) + 쇠(夊)의 회의자(會意字)로, 혈(頁)은 관(冠)이나 탈을 쓴 사람의 머리를 본뜬 것이고, 구(臼)는 양손, 쇠(夊)는 양발의 상형입니다. 관을 쓰고 우아하게 춤추는 여름 제사의 춤의 모양에서, '여름'의 뜻을 나타냅니다. 전(轉)하여 '크다'의 뜻으로 큰 나라, 중국의 뜻도 나타냅니다.
도읍화하(都邑華夏)는 무슨 뜻일까? 도읍(都邑)은 도회(都會)와 같은 말로 사람이 많이 살고 번화한 곳을 말합니다. 도(都)는 천자의 거소(居所)를 말합니다. 《좌전(左傳)》에 "읍(邑)에 선군(先君)의 종묘(宗廟)가 있는 것을 도(都)라 한다." 하였고, 읍(邑)은 국야(國也)라 했으니 읍(邑)은 나라와 통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도읍은 천자(天子)가 사는 곳으로 한 나라의 수도(首都)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즉 '서울'을 말합니다. 화하(華夏). 화(華)는 화려(華麗)하다는 뜻이고, 하(夏)는 대국(大國)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화하(華夏)는 '영화(榮華)로운 대국'이란 뜻을 담아 중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높여서 일컫는 말입니다. 지금의 중화(中華)도 같은 뜻입니다. 화(華)나 하(夏)는 모두 중국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도읍화하(都邑華夏)는 천자(天子)가 거주하는 화하(華夏)의 도읍이란 뜻이 됩니다. 그러면 그 도읍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음 구절에 이어집니다.
동서이경(東西二京) 동과 서에 둘 있으니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일세
동(東)은 상형자(象形字)로 자루의 양 끝은 동여맨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 무거운 자루를 움직임의 뜻에서, 만물(萬物)을 잠에서 흔들어 깨우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쪽, '동쪽'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한 동(東)을 일(日) + 목(木)의 회의자(會意字)로 보아, 태양[日]이 나무[木]의 중간쯤에 있는 모양을 본떠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나무 사이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해의 방향을 나타내기에 '동쪽'을 나타낸다 합니다.
서(西)는 상형자(象形字)로 갑골문(甲骨文)ㆍ금문(金文)은 술 따위를 거르기 위한 용구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가차(假借)하여 방위의 서(西)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는 술을 먹기 위하여 술을 거르는 것이니, 술은 아무래도 해질 무렵에 먹기에, 해가 지는 곳은 서쪽이니 서쪽을 뜻하는 것으로 쓰인 것 같습니다.
또, 서(西)는 소전(小篆)에는 새가 둥지에 앉은 모양입니다. 새가 둥지에 들 때는 해가 서쪽으로 질 때이므로 '서쪽'이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이(二)는 지사자(指事字)로, 두 개의 가로 획으로 수사(數詞)의 '둘'의 뜻을 나타냅니다. 참고로 이(二)는 금전상(金錢上)의 액수 기재에 있어 변조할 수도 있기에 그 변조를 막기 위해서 이(二) 대신 이(貳)로 씁니다.
경(京)은 상형자(象形字)로,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집 모양을 본떠 '높은 언덕ㆍ수도(首都)의 뜻을 나타내고, 이 뜻이 전(轉)하여 '크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동서이경(東西二京)은 화하(華夏 중국)의 도읍지로 동쪽과 서쪽에 서울이 두 개 있다는 내용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입니다.
동쪽의 서울은 낙양(洛陽)을 말하는데, 이 낙양을 서울로 둔 나라는 역사적으로 동주(東周)ㆍ동한(東漢)ㆍ위진(魏晉)ㆍ석조(石趙)ㆍ후위(後魏)가 있었습니다.
서쪽의 서울에는 장안(長安)이 대표적인데 이 장안을 서울로 둔 나라는 서주(西周)ㆍ서진(西秦)ㆍ서한(西漢)ㆍ후주(後周)ㆍ수(隨)ㆍ당(唐)이 있습니다.
낙양(洛陽)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770년의 일로 동주(東周)의 도읍으로 정해진 것이 시초입니다. 주(周)나라는 주무왕(周武王)이 폭군 주왕(紂王)을 쳐 물리치고 호경(鎬京)에 도읍하고 천자(天子)로 즉위하면서 시작됩니다. 이어 성왕(成王) 강왕(康왕)으로 왕위가 계승되었고, 다시 몇 대를 더 내려가 제10대부터 나라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다가 기원전 771년 주유왕(周幽王) 때 서북방 이민족인 견융(犬戎)과 신(申)나라 제후가 야합하여 수도 호경(鎬京) 침입하여 천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기원전 770년 주평왕(周平王)을 천자로 옹립하고 동도(東都)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이 낙읍이 낙양(洛陽)입니다. 이리하여 동주(東周)시대가 열립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시작입니다. 낙양 천도 이전을 서주(西周)시대라 하고 천도 후를 동주(東周)시대라 합니다.
이렇게 낙양(洛陽)은 시작 되었고, 그 후,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낙양에 도읍을 정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한(前漢)은 장안(長安)에 도읍하였는데 후에 왕망(王莽)이 황위(皇位)를 찬탈하고 국호를 신(新)이라 바꾸고 통치했는데, 이를 광무제가 다시 멸하고 한실(漢室)을 부흥시키고 낙양에 도읍을 했던 것입니다. 이를 후한(後漢)이라 합니다. 후한은 장안(長安)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한(東漢)이라 하고, 전한(前韓)은 낙양의 서쪽 장안(長安)에 있기에 서한(西漢)이라 합니다. 광무제는 낙양을 동경(東京)이라 했고 한고조(韓高祖)가 도읍한 장안(長安)을 서경(西京)이라 불렀습니다.
그후로도 낙양은 위진(魏晉)ㆍ석조(石趙)ㆍ후위(後魏)가 서울로 삼았습니다. 낙양은 운하와 황하의 지류인 낙하(洛河)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물류가 원활하여 수도로 정해져 오랫동안 각광을 받아왔으나 지금은 옛 명성을 잊은 듯합니다.
장안(長安)은 한(漢)의 고조(高祖)가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됩니다. 함양(咸陽)에 도읍했던 진(秦)나라가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육국(六國)이 통일된 후 통일국가를 이루다가, 진시황 사후 다시 분열되었는데 그 주역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었죠.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 한(漢)의 유방(劉邦)이 패권을 다투다가 결국 유방이 승자가 되어 한의 고조(高祖)가 되었습니다. 고조는 장안(長安)에 도읍을 정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한나라의 역사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의 역사가 있는데, 전한(前漢)은 장안(長安)이 서울이고, 후한(後漢)은 낙양(洛陽)이 서울이었습니다. 장안은 서쪽에 있으므로 서경(西京)이라 하고, 낙양은 동쪽에 있으므로 동경(東京)이라 합니다. 따라서 동서이경(東西二京)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장안(長安)의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서주(西周)의 도시 풍읍(豐邑)에 이르는데 풍읍은 문왕(文王) 때까지 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무왕 때 맞은편 호경(鎬京)으로 천도했던 것입니다. 그후 한(漢)의 고조(高祖)가 진(秦)의 수도인 함양(咸陽) 교외에 새로운 도성을 건립한 것이 장안(長安)입니다.
그후 후주(後周)ㆍ수(隨)ㆍ당(唐)이 모두 장안에 도읍을 정했으니 장안은 서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장안의 화제다' 라는 말을 쓰는데 이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낙양과 장안은 중국의 대표적인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송(宋)나라는 개봉(開封)을 수도로 삼았고, 뒤를 이은 원(元)나라는 북경(北京)에 수도를 정하였습니다. 그후 잠시 명나라 초기에 남경(南京)에 수도를 정한 바 있지만 다시 북경으로 천도하였고, 뒤를 이은 청(靑)나라와 중화민국(中華民國)은 북경을 수도로 삼았으니 낙양(洛陽)과 장안(長安) 동서이경(東西二京)은 역사의 뒤안길에 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왕조의 수도였기에 역사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마음속의 수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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