宮殿盤鬱 樓觀飛驚
【本文】
宮殿盤鬱 樓觀飛驚 궁전반울 누관비경
웅장한 궁전은 빽빽하게 들어찼고
드높은 누각은 하늘 날듯 놀랍도다.
【훈음(訓音)】
宮 집 궁 殿 큰집 전 盤 서릴 반 鬱 빽빽할 울
樓 다락 루 觀 볼 관 飛 날 비 驚 놀랄 경
【해설(解說)】
앞 장에서 우리는 도읍(都邑)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화하(華夏)의 도읍에는 동서이경(東西二京)이 있는데 그것은 북망산(北邙山)을 등지고 낙수(洛水)를 바라보고 건립된 낙양(洛陽)과 위수(渭水)가에 자리하고 경수(涇水)를 의지한 장안(長安)에 대하여 공부했는데, 이번 장에서는 그 궁궐의 위용(威容)에 대하여 거론하고 있습니다.
궁전반울(宮殿盤鬱) 웅장한 궁전은 빽빽하게 들어찼고
궁(宮)은 상형자(象形字)로, 건물 안의 방들이 이어져 있는 모양을 본떠, 궁궐(宮闕)의 뜻을 나타냅니다. 궁(宮)은 진한(秦漢) 이전에는 가옥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진한 이후부터 궁궐(宮闕)의 전칭(專稱)으로 쓰였습니다.
전(殿)은 둔() + 수(殳)의 형성자(形聲字)로, 둔()은 대(臺)에 앉은 사람의 엉덩이를 상형(象形)한 것입니다. 수(殳)는 막대기를 뜻하여 엉덩이를 때리다의 뜻이기는 하지만, 엉덩이 그 자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또, 의미가 전(轉)하여, 엉덩이와 같은 안정감이 있는 큰 집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시(尸)는 집을 뜻하고, 공(共)은 중심이 되는 곳을 뜻합니다. 수(殳)는 '몽둥이 수'자인데 이는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집 중에 중심이 되는 집을 병사들이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집은 곧 궁궐을 뜻합니다.
전(殿)은 대당야(大堂也)라 했으니 큰 집을 말합니다. 병사들이 호위하는 큰 집은 제왕이 사는 궁전(宮殿)을 말합니다.
반(盤)은 명(皿) + 반(般)의 형성자(形聲字)로, 반(般)은 '큰 배'를 뜻합니다. 명(皿)은 그릇이니, 배 모양의 큰 그릇을 말합니다. 이는 물 담는 그릇을 말하니 '대야'를 뜻하기도 하고, 또 음식을 담는 '소반, 쟁반'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리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울(鬱)은 금문(金文)은 상형(象形)으로 사람이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어서, 향초를 디딜방아에 찧고 있는 모양을 본떴으며, 전문(篆文)에서는 거기에 독의 상형(象形)인 '부(缶)'와 향초 넣은 술단지를 본뜬 '창(鬯)' 등이 더해졌는데, 자욱한 향기의 뜻에서 '찌다, 막히다, 답답하다'의 뜻도 나타내게 됩니다. 《설문(說文)》은 림(林) + 울(울금초)의 형성자(形聲字)로 보아, 림(林)은 '두 기둥'의 뜻이고, '울()'은 향초를 뜻한다고 합니다.
울(鬱)은 목총야(木叢也)라 했으니 '나무가 울창하다'는 뜻입니다. 나무가 울창한 것은 무성(茂盛)한 것이니 '성하다'의 의미가 있고, 울창하여 조밀한 것은 빽빽한 것이니 '빽빽하다'의 뜻이 있고, 빽빽하면 막히고 답답한 것이니, '막히다. 답답하다'의 의미로 쓰입니다.
궁전반울(宮殿盤鬱)은 천자가 기거하는 궁전의 위용을 묘사한 것인데 궁전이 빽빽히 들어찬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궁(宮)은 원래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거주하는 가옥의 의미로 쓰이다가 진한(秦漢) 이후에는 천자(天子)가 머무는 곳으로 쓰였습니다. 궁(宮)은 천자의 평상시 거소(居所)를 말하고, 전(殿)은 정사(政事)를 보는 곳을 말합니다. 이를 합쳐 궁전(宮殿)이라 하니 이는 천자의 거소인 전각(殿閣)을 말합니다. 반울(盤鬱)이란 '빽빽히 서리었다.'는 말이니 건물이 운집(雲集)했다는 뜻입니다.
누관비경(樓觀飛驚) 드높은 누각은 하늘 날듯 놀랍도다.
루(樓)는 목(木) + 루(婁)의 형성자(形聲字)로, 루(婁)는 가공(加工)한 데다 다시 가공함의 뜻입니다. 여기에 목(木)이 가해져 위로 위로 치솟는 건조물(建造物)의 뜻이 되었습니다. 루(樓)는 중옥야(重屋也)라 했으니 '층계집, 다락'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락집', '망루(望樓)'의뜻을 나타냅니다.
관(觀)은 견(見) + 관(雚)의 형성자(形聲字)로, 관(雚)은 눈언저리가 붉은 황새의 뜻입니다. 황새는 눈이 밝은데, 여기에 견(見)이 더해져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다, 자세히 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본다는 의미를 담은 높은 건물을 의미하는'누각(樓閣)'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비(飛)는 상형자(象形字)로, 새가 날개를 치고 나는 모양을 본떠 '날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경(敬)은 마(馬) + 경(敬)의 형성자(形聲字)로, 경(敬)은 '삼가다'의 뜻입니다. 이는 말이 몸을 긴장시켜 '놀라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누관비경(樓觀飛驚)은 드높은 누각(樓閣)과 관대(觀臺)가 하늘을 나는 새처럼 높이 솟아 놀랍다는 말입니다.
누관(樓觀)은 누각(樓閣)과 관대(觀臺를 ) 말합니다. 이층 이상 높이 지어 올라가 바라보는 곳을 누(樓)라 하고, 역시 높이 지어 멀리 살피는 건물을 관(觀)이라 합니다. 누(樓)는 누각(樓閣) 혹은 망루(望樓)를 말합니다. 관(觀)은 관대(觀臺)를 말합니다. 관(觀)은 고대 궁궐문(宮闕門) 양 옆에 설치한 돈대(墩臺) 위의 망루(望樓)를 말합니다. 그리고 관(觀)은 궐(闕)과 같은 말입니다. 궐(闕)은 궐문(闕門)을 말하는데, 궐문은 궁전(宮殿)의 동서남북의 정문(正門)을 비낀 곳에 궁을 지키기 위해 낸 궁문(宮門)을 말합니다.
비경(飛驚)은 새가 나는 듯 놀랍다는 말입니다. 이는 건물이 큰 새가 날개짓으로 지축을 찰듯한 웅장한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시경(詩經)》『홍안지습(鴻雁之什)』「사간(斯干)」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궁전을 짓고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 중 략 .........
如跂斯翼 여기사익 지음새는 위엄있고 당당하며
如矢斯棘 여시사극 모서리는 화살같이 곧기도 하네.
如鳥斯革 여조사혁 추녀는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하고
如翬斯飛 여휘사비 처마는 꿩이 나는 듯하니
君子攸躋 군자유제 군자께서 높이 앉으실 곳이네.
殖殖其庭 식식기정 평평하고 넓은 뜰에
有覺其楹 유각기영 높고 곧은 기둥들
噲噲其正 쾌쾌기정 바깥채는 밝고 훤하며
噦噦其冥 홰홰기명 안채는 그윽하니
君子攸寧 군자유녕 군자께서 편히 거처할 곳이라네.
........... 중 략 .............
이 노래를 보면 천자문의 누관비경(樓觀飛驚)을 연상하게 합니다. 추녀는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하고 처마는 꿩이 나는 듯한 궁전의 모습입니다.
궁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이겠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제후국을 멸망시킬 때마다 그 나라의 궁전을 하나씩 지었다고 합니다. 육국(六國)을 대표한 궁전이었으니 얼마나 멋지고 웅장한 건물이었을까요? 진나라의 수도는 함양(咸陽)이었는데 그곳은 훗날 장안(長安)이라 불려진 곳이죠. 지금은 서안(西安)이라 하지요. 천하를 통일하니 인구가 많아지고 궁전도 협소하여 위수(渭水)의 남쪽에 새로운 궁전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아방궁(阿房宮)입니다.
그 규모는 동서로 500(680m)보, 남북 50장(113m)으로 궁전 위층에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에는 5장(丈)의 깃발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시황 당대에 완성하지 못하고 뒤를 이어 공사를 계속했지만 진시황 사후 정세가 어지러워 다시 난세가 되고, 곳곳에서 영웅들이 일어나 결국 진(秦)은 항우(項羽)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 항우는 아방궁을 태우게 되는데 무려 3개월 동안 탔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역대 황제들이 사는 궁전은 아방궁만큼은 아니더라도 높고 거대한 궁전을 짓고 천하를 호령하는 위엄을 세웠던 것입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유명한 오월의 싸움, 잘 아시지요?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명신(名臣) 오자서(伍子胥)의 도움을 받아 회계산(會稽山)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사로잡아 굴복시키고 부왕 합려(闔閭)의 원한을 풀게 됩니다. 오왕 부차는 원한을 풀고 모욕을 주기 위해 구천을 노복(奴僕)으로 삼아 부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왕 부차는 구천을 이겼다는 승리감과 환락을 위하여 풍광이 뛰어난 고소산(姑蘇山)에 높은 고소대(姑蘇臺)를 짓게 됩니다. 3년여 공사 끝에 완성했는데 고소대를 매우 화려하고 호화롭게 치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때를 기다리며 미인계(美人計)로 오나라를 전복시킬 계획을 하게 됩니다. 월나라의 제일 미녀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보내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환락에 빠지도록 하여 오나라를 뿌리 채 흔들 계책으로 고소대를 짓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꿈에도 생각 못한 부차는 서시와 환락을 즐기려 고소대를 짓느라 국력을 소진하게 됩니다.
이 고소대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 둘레가 3km가 넘었는데 부차는 그곳에 1천여 명의 궁녀를 머무르게 하여 밤낮으로 주연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다 춘소궁(春宵宮)을 지어 1천 말을 담을 수 있는 술독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인공호수인 천지(天池)를 파고 그 위에 왕 전용의 청룡주(靑龍舟)를 띄워 미녀 서시와 춤추는 가무객(歌舞客)을 태우고 날마다 주연을 베풀며 향락을 즐겼습니다. 또한 구리기둥과 옥으로 만든 창틀, 주보(珠寶)로 만든 해령관(海靈館)과 관와각(館娃閣)을 건축하였습니다. 호화의 극치를 보였으니 백성의 원성이 얼마나 높았으며 내외의 기강이 얼마나 풀어졌겠습니까? 그러니 부차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와신상담하던 구천에게 패하게 되니 후회한들 때는 이미 늦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부차는 고소대를 짓고 춘소궁을 낙성할 때 저 《시경(詩經)》의「사간(斯干)」을 연주했을 것입니다. 높은 누각과 관대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을 때 백성의 원성도 하늘을 찌르지 않았을까요?
이번 천자문은 천자가 거처하는 궁전의 규모와 웅장한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천자나 왕이 이런 곳에 사는 것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니 백성을 귀히 여겨서 어진 정치로 백성을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