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寫禽獸 畵彩仙靈
【本文】
圖寫禽獸 畵彩仙靈 도사금수 화채선령
누각엔 상서로운 새와 짐승 그려 놓고
궁전엔 선령 모습 화려하게 그려 놨다.
【훈음(訓音)】
圖 그림 도 寫 그릴 사 禽 새 금 獸 짐승 수
畵 그림 화 彩 채색 채 仙 신선 선 靈 신령 령
【해설(解說)】
지난 장에서는 궁전 전각의 위용에 대하여 서술했는데 이번에는 궁전 내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사금수(圖寫禽獸) 누각엔 상서로운 새와 짐승 그려 놓고
도(圖)는 위(口) +비(啚)의 회의자(會意字)로, 위(口)는 '두르다'의 뜻이고, 비(啚)는 쌀 창고를 본떠, 경작지가 있는 경계구역을 뜻합니다. 경계 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축도(縮圖)입니다. 지도(地圖)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도(度)와 통하여 '헤아리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사(寫)는 면(宀) + 석(舃)의 형성자(形聲字)로, 석(舃)은 '석(席)' 따위와 통하여, '깔다'의 뜻이고, 면(宀)은 '덮다'의 뜻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실물(實物)을 밑에 깔고, 그 위에 종이 따위를 덧씌워 '베기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사(卸)와 통하여, '풀어 헤치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금(禽)은 금문(金文)은 필(畢) + 금(今)의 형성자(形聲字)로 되어 있는데, '필(畢)'은 쥘손이 달린 그물를 상형(象形)하였고, '금(今)'은 '함(含)'과 통하여, '삼키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새를 그물로 잡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뒤에 이 뜻에 끌려서 '畢'의 부분이 짐승 꼬리같이 변형되어 현재의 '금(禽)의 자체(字體) 되었다고 합니다. 또, 유(禸) + 흉(凶) + 금(今)의 상형ㆍ형성자(象形 形聲字)로, 짐승을 본뜬 것인데 유(禸)는 네 발, '흉(凶)'은 머리를 상형(象形)하고 금(今)은 음부(音符)를 뜻하여 뛰어다니는 짐승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짐승 모두를 이르다가 나중에는 '날짐승'만 이르게 되었습니다. 날짐승의 총칭인 '새'를 뜻합니다.
수(獸)는 단(單) + 견(犬)의 회의자(會意字)로, '단(單)'은 짐승을 잡는 활의 상형(象形)이고, '견(犬)'은 개의 상형(象形)입니다. 개와 활을 써서 사냥을 하다, 사냥을 해서 잡은 새나 짐승을 말합니다. 그래서 '짐승'의 뜻을 나타냅니다.
도사금수(圖寫禽獸)는 누각에 진귀하고 상서로운 새와 짐승을 그려 놓았다는 뜻입니다.
도사(圖寫)는 '그림을 그리다'라는 뜻이고, 금수(禽獸)는 '새와 짐승' 즉 '날짐승과 길짐승'을 뜻합니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용(龍)ㆍ기린(麒麟)ㆍ봉황(鳳凰)ㆍ거북(龜)을 신성시하였는데, 이를 사령(四靈)이라 하여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성인(聖人)이 출세하면 이런 동물이 나타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령(四靈)을 전각 등에 그려서 상서로움이 깃들기를 기원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금수(禽獸)는 이와 같은 진귀하고 상서로운 동물을 말합니다.
용(龍)은 뱀처럼 비늘이 있으며, 소머리에 사슴뿔, 새우의 눈에 소의 귀를 하고, 독수리 발톱을 가졌으며 사자의 꼬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못이나 바다에 살며,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며 비바람을 불러 이르키는 풍운조화를 부리는 신령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제왕들은 용을 권력과 존엄의 상징으로 삼았고, 보통 백성들은 용을 미덕과 힘의 화신으로 여겨왔습니다.
기린(麒麟)은 몸은 사슴 같고, 이리의 이마와 말의 다리, 꼬리는 소꼬리 같으며, 머리엔 사슴과 비슷한 일각수(一角獸)를 가졌으며, 털은 오색광채를 띄고 있다고 합니다. 기(麒)는 수컷이고 린(麟)은 암컷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프리카의 기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린은 덕성을 지닌 인자한 짐승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봉황(鳳凰)은 닭의 머리에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이 등, 물고기의 꼬리를 갖추고 있으며, 몸과 날개는 오색찬란하다고 합니다. 봉(鳳)은 수컷이고 황(凰)은 암컷을 말합니다. 이 봉황은 성군(聖君)이 세상에 나오면 나온다는 서조(瑞鳥)입니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는다고 합니다.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는 이유로 봉황은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천자(天子)가 거주하는 궁궐 문엔 봉황 무늬를 장식하였고, 궁궐도 봉궐(鳳闕)이라 칭했습니다. 천자 타는 수레는 봉가(鳳駕)ㆍ봉연(鳳輦) 혹은 봉거(鳳車)ㆍ봉여(鳳輿)라 했고, 천자의 조서를 봉조(鳳습니다.
거북(龜)은 고대로부터 장수와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래서 고대 제왕의 황궁, 저택, 능묘 안에 이를 조각하거나 동으로 주조하여 국운이 오래 가도록 기원했던 것입니다.
사령(四靈) 중 기린(麒麟)과 봉황(鳳凰)의 이야기에 대해서 약술해 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인 황제(黃帝) 때 정원에 처음 나타났고, 요(堯)임금 때도 수도에 한 쌍이 나타난 바 있고, 공자(孔子)의 어머니가 회임했을 때 기린이 나타나 성인의 탄생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공자 말년인 노나라 애공(哀公) 때 애공이 사냥대회를 열어 사냥을 하던 중 기린이 나타났는데 무지한 사람들이 이를 잡으려 하니 달아나다 발목이 부러져 그만 죽어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이어서 아무도 이 짐승의 이름을 모르자 공자께 문의하게 되었는데,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고, 짐승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습니다. 이때 공자는 "나의 길이 다했다." 며 길이 탄식했습니다. 기린이 나타났지만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해 죽음을 당한 것이 자신의 처지와 같음을 탄식하며, 이 세상에 태어나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하여 그의 도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기서 끝남을 예견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기린은 성인의 출현과 종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봉황은 기린과 마찬가지로 성군의 치세에만 나타나 성군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고대 성군(聖君)이라 일컫는 제왕으로 황제(黃帝)를 비롯하여 요(堯)ㆍ순(舜)ㆍ주(周) 때에 봉황이 나타나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국 고대에는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증명하는 징조로 봉황이 등장하고 있음을 봅니다. 주왕조가 일어나기 전에는 기산(岐山)에서 봉황(鳳凰)이 울었는데 백성들은 상서롭게 여겨 앞다투어 그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봉황은 새왕조를 여는 상서로운 길조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림으로 해서 제왕의 권위와 성군의 덕치를 염원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던 것입니다.
화채선령(畵彩仙靈) 궁전엔 선령 모습 화려하게 그려 놨다.
화(畵)는 화(畫)의 속자(俗字)입니다. 화(畫)는 갑골문(甲骨文)ㆍ금문(金文)은 상형자(象形字)로, 붓을 손에 들고 교차하는 선의 도형을 그리는 모양을 본더, '한계를 짓다, 그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한 전문(篆文)은 율(聿) + 전(田) +위(口)의 회의자(會意字)로 '율(聿)'은 붓을 본뜬 것이고, '위(口)'는 '테두리, 구획'의 뜻입지다. 농경지[田]의 구획[口]을 도형 위에 그리다[聿]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리다, 그림'의 뜻을 나타냅니다.
채(彩)는 삼(彡) + 채(采)의 형성자(形聲字)로, 삼(彡)은 '채색'의 뜻이고, 채(采)는 '나무 열매를 따다'의 뜻입니다. 이는 많은 색깔 중에서 사람이 한 색깔을 의식적으로 골라서 '집어내다, 채색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무늬, 채색, 빛'의 뜻으로 쓰입니다.
선(仙)은 인(人) + 산(山)의 회의ㆍ형성자(會意形聲字)로, 두 자(字)를 합하여 산(山)에 사는 사람, 곧 신선(神仙)의 뜻을 나타냅니다. 산에 숨어 살면서 불로장생(불로장생)의 도를 닦는 사람, 곧 신선(神仙)을 뜻합니다. 선(仙)의 본자(本字)는 선(僊)입니다. 즉 선(仙)은 선(僊)의 약자(略字)입니다.
령(靈)은 전문(篆文)에 옥(王) + 령(霝)의 형성자(形聲字)로, '령(霝)'은 기도하는 말을 늘어놓아 비 내리기를 빌다의 뜻이며, '옥(王)은 '옥(玉)'의 뜻입니다. 이는 신(神)을 섬길 때 옥을 쓰므로 덧붙인 것입니다. 또 별체(別體)는 '무(巫)'를 곁들여 기우제를 올리는 사람, '무당'의 뜻을 나타내고, 파생하여 '넋, 신령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서경(書經)》에 '유인만물지령(惟人萬物之靈)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신령'의 뜻으로 변했습니다.
화채선령(畵彩仙靈)은 궁전엔 신선(神仙)과 신령스러운 모습을 그려서 아름답게 채색하였다는 뜻입니다. 화채(畵彩)는 그림의 채색, 또는 그림의 빛깔을 말합니다. 또 그려서 채색했다는 뜻도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후자를 뜻합니다. 선령(仙靈)은 신선(神仙)과 신령(神靈)을 말하는데, 이는 신선(神仙)과 신령(神靈)스러운 것을 뜻한다 할 것입니다. 또, 고대의 성현(聖賢)을 그리고 채색하여 궁전을 아름답게 장엄했는데, 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임금이 이런 그림을 보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그 덕을 본받아 덕(德)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나라를 태평하게 할 것을 염원하도록 한 것입니다.
신선들은 맑고 청정하며 장생불사(長生不死)와 신이(神異)한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고대로부터 확고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전각에 이런 신선들의 모습을 그려서 장수와 복록(福祿)을 기원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신선하면 도교(道敎)와 관련이 깊기 때문에 도교의 시조로 받드는 노자(老子)를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했습니다. 또한 마고선인(麻姑仙人)도 등장합니다. 마고선인은 아득한 옛날 선천과 후천의 중간인 짐세(朕世)에 태어난 선인으로 흔히 마고할미라 합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기원이라 할 만큼 동이족의 어머니입니다. 나중에 지리산에서 와서 여산신이 되었다고 하지요. 선인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선인입니다. 중국에서도 받들고 있어 신선도에 등장합니다.
곤륜산(崑崙山)의 낭원(閬苑)에 살고 있다는 서왕모(西王母)는 3천년만에 한 번 열리는 반도(蟠桃)라는 복숭아의 결실을 기념하는 반도연회(蟠桃宴會)의 장면과 이에 참석하기위한 신국 전한(前漢)의 문인으로 자는 만청(曼倩)이며 벼슬은 상시랑(常侍郞),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습니다. 유창한 변설(辯舌)과 해학,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속설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장수하였다 하여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선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그려졌다고 합니다. 또, 동방삭(東方朔)은 중 진(晉)나라 도교 연구가 갈홍(葛洪)이 지은 《신선전(神仙傳)》에는 500여 명이 넘는 신선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분이 종리권(鍾離權)ㆍ여동빈(呂洞賓)ㆍ장과로(張果老)ㆍ한상자(韓湘子)ㆍ이철괴(李鐵拐)ㆍ조국구(曹國舅)ㆍ남채화(藍彩和)ㆍ하선고(何仙姑)인데 이를 팔선(八仙)이라 합니다.
종리권(鍾離權)은 한(漢)나라 사람으로 팔선 중 우두머리며 연금술을 터득했다고 하는 선인으로, 머리 양쪽에 상투를 틀고 배를 드러낸 채 파초선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여동빈(呂洞賓)은 당(唐)나라 사람으로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신선이 되었으며, 칼을 찬 장년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장과로(張果老)는 당(唐)나라 사람으로 둔갑술에 능하고 흰 노새를 타고 다녔으며 노새를 타지 않을 때는 종이처럼 접어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노새를 거꾸로 타거나 어고간자(漁鼓簡子)를 든 노인의 모습이며, 한상자(韓湘子)는 여동빈(呂洞賓)이 전해준 복숭아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신선이 되었다고 전하며, 피리나 어고간자를 든 청년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철괴(李鐵拐)는 당(唐)나라 사람으로 수도 정진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전하며, 철괴를 들고 연기나는 호로병을 지닌 남루하고 초라한 모습이며, 조국구(曹國舅)는 10세기경의 송(宋)나라 사람으로 죽은 사람 위에서 치면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음양판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남채화(藍彩和)는 한쪽 발만 신발을 신은 여장을 한 남자로 꽃 광주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하선고(何仙姑)는 7세기경 사람으로 천도(天桃)를 먹고 선녀(仙女)가 되었다고 하며 연꽃을 손에 들고 있거나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팔선 외에도 황초평(黃初平)은 진대인(晉代人)으로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중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돌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 모두 양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막대를 들고 양을 치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장지화(長志和)는 물위에 앉아 있는 술 취한 선비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또 도술에 능했던 송(宋)나라의 유해(劉海)는 두꺼비 박제(剝製)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꺼비는 유해를 어디든지 데려다 줬다고 합니다. 가끔 두꺼비가 우물 속으로 도방쳐 금전이 달린 끈으로 끌어올리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그를 하마선인(蝦蟆仙人)이라 하는데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 선인은 부귀의 상징으로 즐겨 그린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제왕이 살고 있는 누각과 궁전에는 화공으로 하여금 화려한 채색으로 제왕의 권위와 장수를 기원하는 사령(四靈) 등의 진귀한 금수(禽獸)를 그렸으며, 신선(神仙과) 성현(聖賢)의 그림을 아름답게 채색하여 그려 장수와 복록이 오래오래 가도록 기원했고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성군(聖君)이 되기를 염원했던 것입니다.